규자[規刺] (군주에게) 넌지시 권유하다. 충심으로 권고하다.
규장[圭璋] ‘규’는 제후가 천자를 알현할 때 드는 옥이며 ‘장’은 알현이 끝난 뒤에 드는 옥으로, 모두 귀중한 예기(禮器)이다. 고상한 덕을 비유한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권아(卷阿)에 “장중하고 드높은 기상, 규와 같고 장과 같도다.[顒顒卬卬, 如圭如璋.]”라는 구절이 보인다. <禮記 禮器 孔穎達疏>
규장[珪璋] 규(珪)와 장(璋). 모두 옥(玉)으로 만든 홀의 명칭으로 신분을 나타내는 도구이다. 위가 좁고 뾰족하며, 밑부분이 길게 네모난 것을 규(珪)라 하고, 규(珪)의 절반 크기를 장(璋)이라 한다[皆器名也 銳上方下曰珪 半珪曰璋]. 珪(규)는 ‘圭(규)’와 같다. 공적(公的) 의식(儀式)에 참가하는 귀인이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지니는 옥(玉)으로, 윗부분은 뾰족하고 아랫부분은 얇고 긴 장방형(長方形)으로 되어 있다. ‘장(璋)’은, 규(珪)를 세로 방향으로 절반을 자른 모양의 홀(笏)로, 용도는 규(珪)와 같다.
규장[圭章] 규장(珪璋)과 같은 말로, 혼례(昏禮)에서 예물로 쓰는 옥을 말하는데, 전하여 아주 훌륭한 인품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규장[珪璋] 규장은 고대 조빙(朝聘)에 사용하는 옥으로 만든 매우 귀중한 예기(禮器)로, 매우 고아한 인품에 비유된다. 예기(禮記) 빙의(聘義)에 “규장특달(珪璋特達)”이라 하여, 규장을 가진 이는 다른 폐백(幣帛)이 없어도 곧바로 천자를 뵐 수 있다고 하였다.
규장[圭璋] 예식 때 사용하는 옥(玉)으로, 고결한 인품을 갖춘 인물이라는 말이다. 예기(禮記) 빙의(聘義)에 이르기를 “규장 한 가지만으로 예를 이루고 다른 폐백을 쓰지 않는 것은 그 덕을 인함이다.[圭璋特達 德也]”라고 하였다.
규장[圭璋] 규장은 사자(使者)가 타국에 가서 예식(禮式)을 행할 때에 사용하는 아주 귀한 옥(玉)을 가리킨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옛적에 군자가 덕을 옥에 비유하였다. 온윤하면서도 광택이 남은 인이고 세밀하면서도 엄숙하게 보임은 지이고……규장 한 가지만으로 통하는 것은 덕이다.[夫昔者 君子比德於玉焉 溫潤而澤仁也 縝密以栗知也……圭璋特達德也]”라고 하였다. <禮記 聘義>
규장[珪璋] 규장은 옥으로 만든 예기(禮器)로, 옛날에 조빙(朝聘)을 하거나 제사를 지낼 적에 사용하였다. 장자(莊子) 마제(馬蹄)에 “나무의 순박함을 해치지 않고서야 누가 희준을 만들며, 백옥을 깨뜨리지 않고서야 누가 규장을 만들겠는가. 도(道)와 덕(德)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어찌 인의(仁義)를 주장하겠는가.” 하였다.
규장[珪璋] 시경(詩經) 대아 권아(卷阿)에 나오는 말로, 사방에서 모범으로 삼는 군자를 비유하여 표현한 말이다. 규(珪)와 장(璋)은 모두 조빙(朝聘)이나 제사 때 쓰는, 옥으로 만든 예기(禮器)이다. 시경(詩經)에는 ‘규(珪)’가 ‘규(圭)’로 되어 있다.
규장[圭璋] 옥(玉)으로 만든 귀중(貴重)한 기물(器物)로 빙문(聘問)하기 위해 온 외국사신(外國使臣)이 주인 나라의 임금에게 바치는 것이다. 예기(禮記) 빙의(聘義) 소(疏)에 의하면 예(禮)를 중(重)히 여기고 재물(財物)을 가벼이 여기는 뜻에서, 사신(使臣)이 돌아가려 할 때 주국(主國)의 임금이 경(卿)을 빈관(賓館)으로 보내어 빙례(聘禮) 때 올린 규장(圭璋)을 도로 돌려준다고 하였다.
규장[圭璋] 왕에게 현신(賢臣)이 있어서 임금을 보익(輔翼)하는 아름다움을 형용한 말이다. <詩經 卷阿>
규장[奎章] 제왕의 시문이나 필적 등을 가리킨다.
규장[圭璋] 제후가 조회할 때 잡는 옥의 일종으로 순결하고 고상함을 비유한다. 시경(詩經) 권아(卷阿)에 “존귀하고 엄숙하며, 규와 같고 장과 같네. 아름다운 명망이 있는지라, 개제한 군자를 사방이 기강으로 삼네.[顒顒卬卬 如圭如璋 令聞令望 豈弟君子 四方爲綱]”라고 하였다.
규장각지[奎章閣志] 정조 명편(命編). 규장각(奎章閣)의 설치 연혁・의의 및 조직・기능・각신(閣臣)의 지위와 권리・의무 등을 명시한 책. 건치(建置)・직관(職官)・봉안(奉安)・편차(編次)・서적(書籍)・교습(敎習)・원규(院規)・사실(事實) 등의 8목(目)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2권 1책. <奎章閣志>
규장보각[奎章寶閣] 규장각은 먼저 1694년(숙종20)에 처음 만들었는데, 종부시 북쪽에 있었다. 어제・어필을 보관하는 소각(小閣)을 종부시(宗簿寺)의 속각(屬閣)으로 설치하고, 숙종의 친필로 편액(扁額)을 내걸었으나 곧 폐지되었다. 이어 정조가 즉위하던 1776에 바로 규장각을 설치하였다. 정조는 자신의 정치개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정책연구와 이를 위한 도서의 수집 기관으로 체제와 성격을 재정비하였고, 이로 인해 규장각은 개혁 정치 추진의 중추기관이 되었다.
규장전운[奎章全韻] 정조(正祖)의 명을 받들어 규장각(奎章閣)의 여러 신하가 편찬한 운서(韻書)를 말한다.
규장특[圭璋特] 정실(庭實)이 없이 규(圭)와 장(璋)만을 올린다는 말이다. 예기(禮記) 예기(禮器)에 “규장특(圭璋特)”이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규장은 옥 중에서 귀한 것이고 특(特)은 다른 물건으로 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후가 규를 들고 왕에게 조회하고, 조회하고 나서는 장을 든다.”라고 하였다.
규장특달[圭璋特達] 규와 장은 모두 예식 때 사용하는 옥(玉)으로, 흔히 고결한 인품을 갖춘 인물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예기(禮記) 빙의(聘義)에 이르기를 “규와 장 한 가지만으로 예를 이루고 다른 폐백을 쓰지 않는 것은 그 덕을 인함이다.[圭璋特達 德也]” 하였다.
규장특달[圭璋特達] 규장(圭璋)은 사자(使者)가 타국(他國)에 가서 예식(禮式) 때에 사용하는 아주 귀한 옥(玉)을 가리키는데,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옛날에 군자는 덕을 옥에 비유하였다.……규장 한 가지만으로 통하는 것은 덕이 있기 때문이다.[夫昔者 君子 比德於玉焉……圭璋特達 德也]”라고 하였다. <禮記 聘義> 재덕(才德)이 출중한 사람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규장팔백맹진도[珪璋八百孟津渡] 은(殷) 나라 말기에 주 무왕(周武王)이 주(紂)를 토벌하기 위해 맹진(孟津) 나루에 이르렀을 때, 은 나라를 배반하고 무왕을 따라온 제후가 팔백인이나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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