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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중이로[橘中二老]~귤중지락[橘中之樂]~귤첩[橘帖]


귤중옹[橘中翁]  귤(橘) 속의 늙은이란, 옛날에 파공(巴邛) 사람이 자기 귤원(橘園)에 대단히 큰 귤이 있으므로, 이를 이상하게 여겨 쪼개어 보니, 그 귤 속에 수미(鬚眉)가 하얀 두 노인이 서로 마주 앉아 바둑을 두면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중에 한 노인이 말하기를 “귤 속의 즐거움은 상산(商山)에 뒤지지 않으나, 다만 뿌리가 깊지 못하고 꼭지가 튼튼하지 못한 탓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따 내리게 되었다.”라고 하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귤중이로[橘中二老]  유괴록(幽怪錄)에서 유래한 이야기이다. 옛날 파공(巴邛) 사람의 집 뜰에 귤(橘)나무가 있어서 서리가 온 뒤에 수확하는 데 유독 큰 귤 두 개가 있었다. 따서 쪼개보니 귤마다 흰 수염에 살결이 발그레하고 헌칠한 두 노인이 장기[象戱]를 두며 즐거이 웃고 있었다. 한 노인이 말하기를 “귤 속의 즐거움이 상산(商山)에 뒤지지 않으나, 다만 뿌리가 깊지 못하고 꼭지가 튼튼하지 못한 탓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따게 되었다.”라고 하며 네 노인이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34 仙佛部 橘中二老>

귤중지락[橘中之樂]  바둑 두는 즐거움이다. 유괴록(幽怪錄)에 의하면 “파공(巴邛) 사람에게 귤 과수원이 있었는데 큰 귤 속에 두 늙은이들이 앉아서 바둑을 두며 하는 말이 ‘귤 속의 즐거움이 상산(商山)에 못하지 않는데 다만 깊은 뿌리와 견고한 꽃받침을 얻을 수 없어서 어리석은 사람이 따 버렸네.’라고 하였다.[巴邛橘園中 霜後見橘如缶 剖開 中有二老叟 象戲 象橘中之樂 不減商山 但不得深根固蒂 爲愚人摘下耳]”라고 하였다고 한다.

귤중지락[橘中之樂]  옛날에 파공(巴邛)의 어떤 사람이 자기 귤원(橘園)에 대단히 큰 귤이 열려 있으므로, 이를 이상하게 여겨 따서 쪼개어 보니, 그 귤 속에 수미(鬚眉)가 하얀 두 노인이 서로 마주 앉아 바둑을 두면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중에 한 노인이 말하기를 “귤 속의 즐거움은 상산에 뒤지지 않으나, 다만 뿌리가 깊지 못하고 꼭지가 튼튼하지 못한 탓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따 내릴 수가 있었다.[橘中之樂不減商山, 但不得深根固蒂, 爲愚人摘下耳.]”라고 하였다. <玄怪錄 卷3> 상산의 즐거움이란 곧 진(秦)나라 말기에 세상의 난리를 피해 상산에 은거했던 네 늙은이, 즉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이 일찍이 상산에서 선약(仙藥)인 자지(紫芝)를 캐 먹으며 은거했던 데서 온 말이다.

귤중진락[橘中眞樂]  신선의 즐거움을 뜻한다. 파공(巴邛)의 귤원(橘園) 가운데 서리가 내린 뒤에 항아리만 한 귤이 보였는데, 그것을 갈라 보니 그 가운데 두 노인이 서로 장난치며 말하기를 “귤 안의 즐거움이 상산(商山)보다 못하지 않으나 다만 뿌리가 깊고 꼭지가 견고하지 못할 따름이다.” 하였다고 한다. <幽怪錄>

귤첩[橘帖]  진대(晉代)의 명필 왕희지(王羲之)가 일찍이 어떤 이로부터 귤을 선사받고 감사하는 뜻에서 그에게 서첩을 써 주었던 데서 온 말인데, 그 서첩의 대략에 “평안하십니까. 귤 삼백 개를 받았습니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는 많이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平安如何 奉橘三百顆 霜未降 未可多得]”라고 하였으므로, 이 서첩을 ‘귤첩(橘帖)’ 또는 ‘평안여하봉귤삼첩(平安如何奉橘三帖)’이라고도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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