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직[劇職] 매우 바쁜 직무, 직책.
극진[郤溱] 진(晉)나라의 대부. 극지(郤至)의 선조.
극진문지동락[棘晉門之銅駱] 전란으로 인해 황폐해진 풍경을 말한다. 한(漢) 나라 때 구리로 낙타 두 마리를 만들어서 낙양(洛陽)의 궁성 문 밖에 두었는데, 진(晉)의 색정(索靖)이 앞일을 미리 헤아려보고는 천하가 장차 어지러워질 것을 알고는 구리낙타를 향하여 말하기를 “네가 가시밭 속에 있는 것을 보겠구나.”라 하였다. <晉書 卷六十 索靖列傳>
극진미신[劇秦美新] 세칭 양웅(揚雄)이 지었다는 글. 왕망(王莽)이 한(漢) 나라의 제위(帝位)를 빼앗아 국호를 신(新)이라 했을 때 한 나라의 신하 양웅이 이 글을 지어 올렸는데 내용은, 신 나라의 덕을 찬양하고 횡포한 진 나라를 비난한 것이다. <漢書 卷87 揚雄傳>
극진미신[劇秦美新] 양웅(揚雄)이 지은 문장(文章)으로 문선(文選)에 나온다. 이선(李善)의 주(注)에 인용된 이충(李充)의 한림론(翰林論)에서 “양웅(揚雄)은 진(秦)나라의 횡포를 비판하고 신(新)나라의 훌륭함을 칭송하였는데, 이는 그 잘잘못을 따지고 우열을 비교한다는 뜻이다.”라 하였다. 신(新)은 서한(西漢) 말에 왕망(王莽)이 한(漢)을 찬탈하고 세운 나라이다.
극진미신[劇秦美新] 왕망(王莽)이 한 나라 황실을 몰아내고 신(新) 나라를 세우자 양웅(揚雄)이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봉선문(封禪文)을 모방하여 극진미신(劇秦美新)을 지어 바쳐 왕망의 마음을 즐겁게 했는데, 분서갱유(焚書坑儒)와 도량형을 통일한 진(秦) 나라 시황(始皇)을 비판하고 새로 들어선 신(新) 나라 왕망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지은 글이다. <文選 卷48>
극진지두[極盡地頭]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마음이나 대접이 매우 정성스러움. 더이상 나아갈 데가 없는 막다른 지점. 머리가 땅에 닿도록 극진(極盡)히 함. 몹시 궁하여 여지가 없음. 중정(中正)을 잃고 한 쪽으로 치우친 곳.
극진지수불용[棘津之讎不庸] 극진(棘津)은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의 출생지이다. 사기(史記)에는 동해 가[東海之濱] 출신이라 하였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태공망(太公望)은 제(齊)나라에서 아내에게 쫓겨난 필부(匹夫)요, 조가(朝歌)의 쓸모없는 백정이었으며, 자량(子良)의 쫓겨난 신하로서 극진(棘津)에서는 품팔이를 하였지만 누구 하나 고용해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문왕(文王)이 그를 등용하여 왕자(王者)가 되었다.[太公望, 齊之逐夫, 朝歌之廢屠, 子良(之逐臣, 棘津之讎不庸, 文王用之而王.]”라고 한 데서 보인다. 원주에 “극진(棘津)에서 낚시를 할 때에 고기가 미끼를 물지 않았으며 머슴으로 팔리고자 하여도 스스로 팔리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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