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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반[芹泮]~근백[謹白]~근불속골[筋不束骨]~근불유시[近不踰時]


근반[芹泮]  근반은 시경(詩經) 노송(魯頌) 반수(泮水)의 “즐거워라 반궁(泮宮) 연못, 미나리를 캐 올리네[思樂泮水 薄采其芹]”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반궁 즉 태학(太學)을 가리키는 말이다. 방목은 과거 급제자의 성명을 적은 책이다.

근발[根撥]  기초. 바탕. 근본.

근백[謹白]  삼가 아뢰다. 말씀 드리다.

근보즉공실내빈[近寶則公室乃貧]  광산(鑛山)이나 염지(鹽池)가 가까이에 있으면 백성들은 대부분 상업(商業)이나 공업(工業)을 경영(經營)할 것이므로 농업인구(農業人口)가 감소(減少)하고 세수(稅收)가 줄어들어 공실(公室)이 빈곤(貧困)해진다는 말이다. 진 경공(晉景公) 15년에 진(晉)나라 도성을 강(絳)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자는 논의가 있을 때, 여러 대부들이 순하씨(郇瑕氏) 지역이 토지가 비옥하고 염지(鹽池)와 가까워 국가에도 이롭고 군주도 즐거울 것이라고 하면서 그곳으로 가자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한헌자(韓獻子)가 말하기를 “산림(山林)・천택(川澤)・염지(鹽池)는 다 국가의 보장(寶藏)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부유하면 백성들이 교만하고 나태해집니다. 보장(寶藏)과 가까우면 공실이 빈궁해지니 그곳은 좋아할 곳이라 할 수 없습니다.[夫山澤林盬, 國之寶也. 國饒則民驕佚. 近寶, 公室乃貧, 不可謂樂.]”라고 하면서 신전(新田)으로 옮기자고 하여 그대로 따랐다. <春秋左氏傳 成公 6년>

근보[謹甫]  근보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成三問)의 자(字)이다. 문종이 세자로 있으면서 오랫동안 승화당(承華堂)에서 기거하였는데, 학문에 몰두하여 밤낮으로 해이함이 없었다. 달이 밝고 인적(人跡)이 고요한 밤이면 가끔 손에 한 권의 책을 들고 걸어서 집현전(集賢殿)의 숙직하는 방에 가서 숙직하는 유신(儒臣)과 토론하였으므로, 그때 성삼문 등은 집현전에서 숙직하며 밤에도 감히 관디(冠帶)를 풀지 못하였다. 하루는 한밤중이 되었으므로 세자의 행차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옷을 벗고 누우려 하는데 문밖에서 신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근보를 부르며 문종이 이르렀으므로, 성삼문이 황급히 일어나 엎드려 절을 하였다 한다. <燃藜室記述 卷4 文宗朝故事本末>

근부[斤斧]  도끼. 병기. 다른 사람에게 시문을 고쳐줄 것을 청할 때 쓰는 겸사(謙辭).

근불과협일[近不過浹日]  기르는 기간이 짧은 닭이나 오리 등은 열흘을 넘기지 않음. 협일(浹日)은 열흘. 국어(國語) 초어 하(楚語 下) 관사부론사생(觀射父論祀牲)에 소왕(昭王)이 “풀로 기른 희생(犧牲)과 곡식으로 기른 희생(犧牲)은 기르는 기간이 얼마나 되는 것이오?”라고 묻자, 관사부(觀射父)가 “오래 기르는 큰 짐승은 석 달을 넘지 않고, 짧게 기르는 짐승은 열흘을 넘기지 않습니다.[遠不過三月, 近不過浹日.]”라고 대답하였다.

근불속골 맥부제육[筋不束骨 脈不制肉]  힘줄이 뼈마디를 단속하지 못하고 맥(脈)이 살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으로, 사람이 죽기 전에 나타나는 일종의 병세이다. <通鑑節要>

근불유시 원불경세[近不踰時 遠不經歲]  빠르면 한 철을 넘기지 않고 늦어도 1년을 넘기지 않음. 유사시에는 종군하고 무사시에는 각 주(州)로 분산하여 농사를 지으며, 거리의 원근(遠近)에 따라 나누어 수도(首都)를 번위(番衛)하여 군사들의 복무 기간이 가까워도 한 철을 넘지 않고 멀어도 한 해를 넘지 않는 것으로 당나라 부병제(府兵制)의 좋은 점을 이른다. <通鑑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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