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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게[金剛偈]~금강견고[金剛堅固]~금강노목[金剛努目]~금강신[金剛神]


금강게[金剛偈]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을 가리키는데, 마지막 부분에 “모든 지은 법은 꿈・환영・거품・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 것이다.”라고 하였다.

금강견고[金剛堅固]  금강과 같이 견고하여 무엇이든지 깨뜨리고 어떤 물건한테도 깨지지 않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금강경[金剛經]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을 줄여 부른 것이다. 반야, 곧 지혜의 본체는 금강석처럼 단단하여 어떤 번뇌도 깨트릴 수 있고 또한 어떤 선하지 못한 것들도 함부로 어지럽힐 수 없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금강굴[金剛窟]  금강산 표훈사(表訓寺) 서쪽에 있는 석문(石門)의 이름이다.

금강권[金剛拳]  가장 강한 주먹으로, 무엇이든지 파괴할 수 있다는 제석천(帝釋天)의 주먹이다. 주먹의 네 가지 종류의 하나로, 엄지손가락을 손바닥 안으로 넣고 쥐는 것이다.

금강노목[金剛努目]  설도형(薛道衡)이 종산(鍾山) 개선사(開善寺)에 노닐면서 소승(小僧)에게 묻기를 “금강은 어찌하여 눈을 부릅쓰고 보살은 어찌하여 눈을 내리감는가?”하자, 그 대답이 “금강의 노목(努目)은 사마(四馬)를 항복시키기 때문이고 보살의 내리감는 눈은 육도(六道)를 자비(慈悲)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금강사[金剛社]  김해부(金海府)의 북쪽 대사리(大寺里)에 있는데, 고려 충렬왕(忠烈王)이 합포(合浦)에 행차했을 때 여기에 와서 놀았다 한다. 여기에는 또 불훼루(不毁樓)가 있다고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32 金海都護府>

금강사우군[金剛寫右軍]  우군은 진(晉)나라 때 우군장군(右軍將軍)을 지낸 명필 왕희지(王羲之)를 가리킨다. 왕희지가 직접 금강경(金剛經)을 쓴 적은 없다. 당(唐)나라 장승화(張承和)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금강경을 돌에 새겨서 흥당사(興唐寺)에 둔 일이 있다. <文獻通考>

금강삼매신[金剛三味身]  금강과 같이 견고하여 무너뜨릴 수 없는 몸을 이른다.

금강석[金剛石]  부처의 치아를 비유한 말이다.

금강성[金剛城]  해동악부(海東樂府)에 나온다. 거란의 성종(聖宗)이 개경(開京)으로 쳐들어와 궁궐을 불태웠다. 현종(顯宗)이 개경을 수복하고 나성(羅城)을 쌓으니, 나라 사람들이 기뻐하며 노래를 불렀다. 혹자는, 몽고군을 피하여 강화(江華)로 도읍을 정해 들어갔다가 다시 개경으로 돌아오자 이 노래를 지었다고도 한다. 금강성은 그 성의 견고함이 쇠처럼 단단하다는 말이다.

금강수[金剛水]  소양강의 발원이 금강산이기 때문에 한 말이다.

금강신[金剛神]  금강저(金剛杵)를 잡고 불법을 호위하는 신지(神祗)이다. 행종기(行宗記) 2상에 “금강이란 것은 곧 시종역사(侍從力士)인데 손에 금강저를 잡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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