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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낭가구[錦囊佳句]~금낭경[錦囊經]~금낭옥패[錦囊玉佩]


금낭[錦囊]  금낭(錦囊)은 당(唐)나라 시인 이하(李賀)가 매일 아침 동료들과 함께 나가 노닐 때, 종에게 다 해진 비단 배낭을 등에 메고 따라오게 하면서 시상(詩想)이 떠오르는 대로 써서 그 배낭 속에 넣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해낭(奚囊) 또는 시낭(詩囊)이라고도 한다. <昌谷集 李長吉小傳>

금낭[錦囊]  금낭은 시고(詩稿)를 넣어두는 비단으로 만든 주머니로, 빼어난 시작(詩作)을 비유한다. 당나라 때 천재 시인 이하(李賀)는 매일 아침 해가 뜨면 나귀를 타고 다니며 노닐었는데, 항상 어린 종[奚奴해노]의 등에 오래 묵은 비단 주머니를 지워 따라다니게 하였다. 그리고는 우연히 좋은 시구를 얻으면 즉시 써서 그 금낭 속에 집어넣었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 시구들을 끄집어내어 다시 정리한 뒤 다른 금낭 속에 간수하였다는 고사가 전하는데, 여기에서 온 말이다. <新唐書 卷203 文藝列傳下 李賀>

금낭[錦囊]  비단으로 만든 주머니로, 주로 시고(詩稿)나 중요한 문서를 넣는 주머니이다. 당(唐) 나라 시인 이하(李賀)가 매일 아침 아이 종에게 오래 된 비단 자루[古錦囊]를 등에 메고 따라오게 하면서 시상(詩想)이 떠오르는 대로 시를 지어 그 자루 안에 집어넣었던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203 文藝傳下 李賀>

금낭[錦囊]  지형이 비단 주머니처럼 생긴 곳으로, 전하여 풍수상의 길지(吉地)인 좋은 묏자리를 말하는데, 풍수가를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금낭[錦囊]  금낭은 청오(靑烏)와 함께 대표적인 풍수지리서로 꼽히는 책인데, 택당선생 별집(澤堂先生別集) 권11 풍수험응설(風水驗應說)에 “조종조(祖宗朝)에서 고려(高麗) 시대의 폐단을 없애기 위한 일환으로, 지리(地理)에 관한 서적들을 모조리 불태워 버리고는, 오직 청오(靑烏)와 금낭(錦囊) 등 10여 권의 책만을 남겨 관상감(觀象監)에서 학습하도록 하였다고 한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금낭가구[錦囊佳句]  묘한 시구. 당(唐)나라 시인 이하(李賀)가 매일 아침 나가 노닐 적에, 종에게 다 해진 비단 주머니를 메고 따라오게 하면서 시상이 떠오르면 써서 그 주머니 속에 넣었다.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이하소전(李賀小傳)에 나온다.

금낭경[錦囊經]  진(晉)나라의 곽박(郭璞)이 지은 풍수서. 일명 장서(葬書). 기감(氣感), 인세(因勢), 평지(平支), 산세(山勢), 사세(四勢)의 상편과 귀혈(貴穴), 형세(形勢), 취류(取類)의 하편으로 구성되었으며, 장열(張說), 홍사(泓師), 일행(一行)의 해설이 있다. 풍수지리의 이론을 학문적 차원으로 올려놓아 동아시아 풍수학의 원형으로 평가되며, 훗날 남송의 이학자 채원정(蔡元定)이 교정하고, 원(元)나라 오징(吳澄)이 산정(删定)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청오경(靑烏經)과 함께 풍수지리가의 애독서로 활용되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禮典)에는 지리학의 시험과목으로 청오경(靑烏經)과 함께 배강(背講)하게 하였다.

금낭시[錦囊詩]  당(唐) 나라 때 시인 이하(李賀)가 날마다 명승지를 다니면서 해노(奚奴)에게 비단 주머니[錦囊]를 지고 따르게 하여 시를 짓는 족족 써서 거기에 담았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금낭시천수[錦囊詩千首]  당 나라 이장길(李長吉)은 매일 놀러갈 때에는 아이 종에게 비단 주머니를 들고 따르게 하여, 시를 지어서는 그 주머니 속에 넣어 저녁에 돌아와서 보면 주머니에 시가 가득하였다 한다.

금낭옥패[錦囊玉佩]  훌륭한 시를 뜻한다. 당(唐)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이장길 소전(李長吉小傳)’에 의하면, 장길이 제공(諸公)과 놀러 나갈 때마다, 어린 종복[奚奴]이 오래되고 허름한 금낭[古破錦囊]을 등에 지고 그 뒤를 따라 다녔는데, 장길이 새로운 시를 짓고 나면 곧장 그 금낭 속으로 던져 넣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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