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추야무[今年錐也無] 당나라의 선승 앙산혜적(仰山慧寂) 선사가 사제인 향엄지한(香嚴智閑)에게 최근 깨친 경지를 묻자 향엄이 게송(偈頌)으로 대답하기를 “작년의 가난은 아직 가난이 아니고, 금년의 가난이 비로소 가난일세. 작년엔 송곳 꽂을 땅도 없더니, 금년엔 송곳조차 없구나.[去年貧 未是貧 今年貧 始是貧 去年無卓錐之地 今年錐也無]”라고 하였다. <傳燈錄 卷11 袁州仰山慧寂禪師傳>
금년추야무[今年錐也無] 백성들의 빈궁한 상황이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도척(盜跖)에 “요 임금과 순 임금은 천하를 소유하였지만, 자손들은 송곳 꽂을 땅도 없었다[堯舜有天下 子孫無置錐之地]”라는 말이 나오는데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11권에 다시 “작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요, 금년 가난이 진짜 가난이라. 작년엔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엔 땅에 꽂을 송곳조차 없다네[去年貧 未是貧 今年貧 始是貧 去年無卓錐之地 今年錐也無]”라는 게송(偈頌)이 실려 있다.
금뇨제[金褭蹄] 말발굽 모양의 황금이다. 황금(黃金)의 이칭(異稱)으로, 한 무제(漢武帝) 태시(太始) 연간에 백린(白麟)・천마(天馬)・황금을 발견하고는 황금을 인지(麟趾)・요제(褭蹄)의 형상과 같이 고쳐 주조(鑄造)했던 데서 온 말이다.
금니[金柅] 쇠고동목을 말한다. 고동목은 수레를 멈추게 하는 제동장치이다. 주역(周易) 구괘(姤卦) 상(象)에 “금니(金柅)에 묶어놓는 이유는 음유(陰柔)의 도에 이끌릴까 두려워해서이다.[繫于金柅 柔道牽也]”라는 말이 나온다.
금니[金泥] 아교를 섞은 금분(金粉)으로, 왕사(王事)에 관한 귀중한 글을 봉(封)하는 데 사용되었는데, 전하여 임금이 내리는 교서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금니[金泥] 옛날에는 공문서를 진흙으로 봉하였으므로 봉니(封泥)라 하였다.
금니옥검[金泥玉檢] 금니(金泥)는 수은과 황금가루를 혼합한 물질이고, 옥검(玉檢)은 옥으로 만든 서함(書函) 뚜껑이다. 제왕이 뛰어난 공을 이루어 천하가 안정이 되면 하늘에 고하기 위해 직접 태산(泰山)에 올라가 봉선(封禪)을 행하는데, 이때 그 공적을 기록한 책을 상자에 담고 옥검으로 덮은 뒤에 금니로 봉하여 그 행사에 사용했다고 한다. 한서(漢書) 무제기(武帝紀)의 “태산에 올라 봉 제사를 행하다[登封泰山]”의 주(注)에 “금책(金策) 석함(石函)과 금니(金泥) 옥검(玉檢)을 들고 올라가 봉(封)을 행한다.”라고 하였는데, 금니는 황금으로 도색하는 것을 말하고 옥검은 옥첩서(玉牒書)를 봉함한 궤이다. 후대에도 조서(詔書)・옥책(玉冊) 등 진중한 문적을 봉인(封印)하는 데 금니를 썼다.
금니옥검[金泥玉檢] 금니(金泥)는 아교를 섞은 금분(金粉)으로 왕사(王事)에 관한 귀중한 글을 봉(封)하는 데 사용되었다. 옥검(玉檢)은 옥첩(玉牒), 옥책문을 넣은 옥함(玉函)이다.
금니전축[金泥鈿軸] 금니(金泥)는 금가루를 수은에 개어 만들어서 물건을 봉인(封印)할 때에 사용하는 것이고, 전축(鈿軸)은 금, 은, 옥 등으로 만든 수레이다. 여기서는 인장을 받고 수레를 타고 벼슬살이하러 가는 것을 말한 것이다.
금니지계[金柅之戒] 금니(金柅)는 수레를 가지 못하게 하는 쇠로 된 굄목이다. 이것은 주역(周易) 구괘(姤卦) 초륙(初六)에 나오는 말로, 구괘는 음(陰)이 처음 생기는 괘이다. 음은 항상 양(陽)을 소멸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것을 군자와 소인에 비유하여, 소인은 항상 군자를 해치려 하므로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굳게 억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곧 발호하게 됨을 경계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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