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당[琴堂] 금당은 선정(善政)을 베푸는 수령의 청사라는 뜻이다. 공자(孔子)의 제자 복자천(宓子賤)이 선보(單父) 고을의 수령이 되었을 적에 마루 아래로 내려오는 일이 없이 거문고[琴]만 연주했는데도 잘 다스려지며 교화가 이루어졌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찰현(察賢)>에 “복자천(宓子賤)이 선보(單父)를 다스릴 때 거문고만 타고 있고 몸이 마루를 내려가지 않았으나 선보가 다스려졌다.”라는 말에서 나온 말이다.
금당[琴堂] 수령이 정무를 보는 곳으로 곧 동헌(東軒)을 말한다. 공자(孔子)의 제자 복자천(宓子賤)이 선보(單父)의 수령으로 있을 적에 거문고를 퉁기고 자신은 정당(政堂)을 내려가지 않았는데도 선보가 잘 다스려졌다 한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찰현(察賢)의 “복자천(子賤)이 선보(單父)를 다스릴 때 거문고만 타고 있고 몸이 마루를 내려가지 않았으나 선보가 다스려졌다.”에서 나온 말로, 수령을 칭송할 때 그의 관아를 가리킨다.
금당[金堂] 쌍계사 경내에 있다. 불교 선종의 6대조인 혜능대사의 정상, 즉 두개골을 모시고 있는 건물이다. 통일신라 경애왕 때 진감선사가 건물을 세워서 육조영당이라 하였고, 후에 금당이라 불렀다.
금당[金璫] 한명제(漢明帝) 이후로는 내시들이 전횡하였으므로 환관을 당(璫)이라 칭한다.
금당[金堂] 황금으로 장식한 당옥(堂屋)이라는 말로, 신선의 거처를 뜻한다. 진(晉)나라 왕가(王嘉)의 습유기(拾遺記) 동정산(洞庭山)에 “동정산이 물 위에 떠 있고, 그 아래에 수백 칸의 금당이 있는데, 여기에 옥녀가 거한다. 사시에 금석사죽의 음악 소리가 울리며 산꼭대기까지 들린다.[洞庭山浮於水上 其下有金堂數百間 玉女居之 四時聞金石絲竹之聲 徹於山頂]”라는 말이 나온다.
금당고와[琴堂高臥] 공자(孔子)의 제자 복자천(宓子賤)은 성품이 매우 인애(仁愛)하여 일찍이 선보(單父)를 다스릴 적에 항상 거문고만 타고 앉아서 당(堂) 아래를 내려가지 않았으나 선보가 잘 다스려졌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전하여 금당은 주(州), 부(府), 현(縣) 등의 관서(官署)를 가리킨다. <呂覽 察賢>
금당공금제[琴堂工錦製] 현재(賢才)가 수령으로 부임하여 선정(善政)을 베푼다는 말이다. 금당은 수령의 정사당(政事堂)을 가리킨다. 공자의 제자 복자천(宓子賤)이 선보(單父) 고을의 수령이 되었을 적에 “거문고만 연주할 뿐 마루 아래로 내려오는 일이 없었는데도 잘 다스려졌다.[彈鳴琴 身不下堂而單父治]”라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呂氏春秋 察賢> 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31년에 “그대에게 아름다운 비단이 있을 경우에, 자격이 없는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그 비단을 시험 삼아 재단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子有美錦 不使人學製焉]”라고 하면서 수령의 자격을 논하는 대목이 나온다.
금당부선[金璫附蟬] 시중(侍中)의 지위를 비유한 말이다. 부선(附蟬)은 황금으로 만든 매미 모양의 관 장식을 말한다. 진서(晉書) 권25 여복지(輿服志) 무관(武冠)에 “시중과 상시는 금당과 부선을 가하여 장식한다.[侍中常侍 則加金璫附蟬爲飾]”라고 하였고, 또 “황금은 강해서 백번 단련해도 마모되지 않는 점을 취하였고, 매미는 높은 곳에 거하면서 맑은 이슬을 마시는 것을 취하였다.[金取剛强百鍊不耗 蟬居高飮淸]”라고 하였다.
금당암[金堂菴] 소백산에 있던 암자 이름이다. 현재는 없고, 위치 또한 미상이다.
금당옥서[金堂玉署] 금당(金堂)과 옥서(玉署)는 대궐을 가리킨다.
금당옥실[金堂玉室] 금당옥실이라 함은 부처가 있는 곳을 미화시켜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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