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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대거사[錦帶居士]~금대석조[金臺夕照]~금대준골[金臺駿骨]


금대거사[錦帶居士]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거사(居士)는 비단 띠를 띠고 제자는 흰 명주 띠를 띤다.[居士錦帶 弟子縞帶]”라고 하였다. 정현(鄭玄)의 주(注)에 “거사는 학문과 재예(才藝)가 있는 처사(處士)이다.[居士 道藝處士也]”라고 하였다.

금대산성[金臺山城]  석축 산성으로,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에 있다.

금대석조[金臺夕照]  금대의 저녁노을이라는 뜻이다. 금대는 지승(志乘)에 보이는 것이 셋인데, 하나는 역주(易州)에 있고 둘은 도성에 있다. 지금의 조양문(朝陽門) 밖 동남쪽에 흙 언덕이 높이 솟아 있는데, 호사가들은 이것을 금대로 삼는다.

금대석조[金臺夕照]  금대의 저녁노을. 금대는 연경에 있는 누대로 일명 황금대(黃金臺)라고도 한다. 금대석조(金臺夕照)는 연경팔경(燕京八景) 중의 하나다. 전국 시대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지어서 그 위에 천금(千金)을 쌓아 놓고 천하의 어진 선비를 초빙하였다. <史記 卷34 燕召公世家>

금대은궐[金臺銀闕]  선계(仙界)를 의미하는 말이다. 금대(金臺)는 곤륜산(崑崙山) 정상에 있다는 현포(玄圃)의 열두 옥루(玉樓)와 다섯 금대를 가리키는 말인데, 황제(黃帝) 때 이곳에서 선인(仙人)을 기다렸다고 한다. 은궐(銀闕)은 천상에 있다는 백옥경(白玉京)을 가리킨다.

금대준골[金臺駿骨]  금대는 황금대(黃金臺) 또는 연대(燕臺)라고도 하는데, 옛터가 지금 하북성(河北省) 이현(易縣)의 동남쪽에 있다. 춘추 시대 때 연 소왕(燕昭王)이 천금(千金)을 비치해 놓고 천하의 선비를 초빙하였기 때문에 황금대라고 명명한 것이다. 연 소왕(燕昭王)이 후한 폐백으로 어진 사람을 초치하려고 곽외(郭隗)에게 그 방법을 묻자, 곽외가 말하기를 “옛날 어떤 임금이 천금(千金)을 연인(涓人)에게 주어 천리마를 구해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연인이 가 보니, 그 말이 이미 죽어 버렸으므로 그 말의 뼈를 오백금(五百金)을 주고 사 가지고 돌아오자 그 임금이 크게 노하였습니다. 그러자 연인이 말하기를 ‘죽은 말의 뼈도 사는데 더구나 산 말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천리마가 금방 올 것입니다.’ 하였는데 1년이 채 안 되어 천리마가 세 필이나 왔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왕께서 꼭 어진 인사를 초치하고 싶으시면 이 곽외부터 먼저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곽외보다 더 어진 자가 어찌 천 리를 멀다고 여기겠소이까.” 하였다. 이에 소왕이 곽외를 위하여 다시 궁(宮)을 짓고 스승으로 섬기자 어진 인사들이 앞을 다투어 연나라로 들어갔는데, 악의(樂毅)가 위(魏)나라에서 찾아오자 연 소왕이 그를 아경(亞卿)으로 삼아 국정을 맡겼다. <通鑑節要 卷1>

금대준골[金臺駿骨]  전국 시대 연 소왕(燕昭王)이 곽외(郭隗)에게 인재를 추천하게 하자, 곽외가 “옛날 어떤 임금이 천금(千金)을 연인(涓人)에게 주어 천리마(千里馬)를 구해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연인이 죽은 천리마의 뼈를 오백금(五百金)을 주고 사 왔습니다. 이에 임금이 크게 노하자, 연인이 말하기를 ‘죽은 말 뼈도 오백금을 주고 사는데 더구나 산 말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천리마가 금방 올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1년이 채 안 되어 천리마가 세 필이나 왔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왕께서 꼭 어진 인사를 초치하고 싶으시면 이 곽외로부터 먼저 시작하십시오. 저 같은 자도 등용되는데 하물며 저보다 어진 이야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하였다. 이에 연 소왕이 황금대(黃金臺)를 세우고 곽외를 스승으로 섬기니 천하의 인재들이 앞다투어 연나라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戰國策 燕策1>

금덕[金德]  서쪽이 오행으로는 금(金)에 해당한다. 즉 가을에 오곡이 익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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