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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대은[金門大隱]~금문사책[金門射策]~금문세성[金門歲星]


금문당언 허회이개[今聞讜言 虛懷以改]  지금 곧은 말을 들었으니, 겸허히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여 고치겠다는 뜻이다.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당 태종(唐太宗) “생각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에게 임할 수가 없고 말하지 않으면 생각을 펼 수 없으나 근래에 국사를 담론할 때에 마침내 번다함을 초래하였으니, 사물(사람)을 경시하고 남들에게 교만함이 이 도(道) 때문인 듯하다. 형체와 정신과 마음과 기운이 이 때문에 수고로워지는 것은 아니나 이제 그대의 충성스러운 말을 들었으니, 내가 마음을 비워 고치겠다.[非慮無以臨下, 非言無以述慮. 比有談論, 遂至煩多. 輕物驕人, 恐由茲道. 形神心氣, 非此為勞. 今聞謹言, 虛懷以改.]”라고 한 데서 보인다.

금문대루[金門待漏]  금문은 대궐, 대루는 관원이 입조(入朝)하는 시각을 말함인데, 곧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내직(內職)을 가리킨다.

금문대은[金門大隱]  금문(金門)은 한(漢)나라 미앙궁(未央宮)의 대문인 금마문(金馬門)이다. 문 앞에 구리로 만든 말이 있으므로 이렇게 부르며, 조칙(詔勅)을 작성하는 문학 전공의 선비들이 이 문으로 출입하였다. 대은(大隱)은 사람이 많은 저잣거리에서 이름을 숨기고 사는 것이다. 진(晉)나라 왕강거(王康琚)의 반초은시(反招隱詩)에 “작은 은자는 사림에 숨고 큰 은자는 조정과 저자에 숨는다.[小隱隱陵藪, 大隱隱朝市.]”라고 하였다. <文選 卷11>

금문대조[金門待詔]  황제의 총애를 받았던 동방삭(東方朔)・주보언(主父偃)・엄안(嚴安)・서락(徐樂)등이 모두 금마문에서 조명을 대기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금문사책[金門射策]  과거에 응시하여 단번에 합격했음을 이른다. 금문(金門)은 금마문(金馬門)의 준말로, 한(漢)나라 미앙궁(未央宮)의 궁문 이름이다. 학사(學士)들이 조서를 기다렸던 곳이다. 사책(射策)은 ‘대책을 쏜다’는 말로 한(漢)나라 때 선비를 뽑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사리를 따져 의견을 개진하는데 그 말이 사리에 꼭 맞는 것이 마치 과녁에 맞는 것과 같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뒤에는 응시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文心雕龍 卷5 議對>

금문상서[今文尙書]  서경(書經)은 진(秦) 나라가 모든 책을 불태운 뒤에 세상에서 전송(傳誦)하는 자가 없었으므로 한(漢) 나라 초기에 서경(書經)의 학문을 복구하기 위하여 서경(書經)을 잘 아는 사람을 천하에 구했으나 없었다. 이때 마침 복승(伏勝)이 잘 안다는 말을 듣고 불러오려 하였으나 복승의 나이 이미 90이 넘어 걸음을 걸을 수 없으므로 태상장고(太常掌故) 조조(鼂錯)에게 명하여 가서 받아오게 하였다. 복승은 29편을 전송하니 이것을 금예(今隷)로 썼기 때문에 ‘금문상서(今文尙書)’라 하였다. 금문상서는 고문상서보다 16편이 적다. 이것은 복승이 다 기록하지 못하여 탈락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금문상서[今文尙書]  중국 한나라 때 통용되던 예서(隸書)로 쓰여진 상서. 한나라 때부터 송나라 때까지 서경을 상서라 불렀다. 진나라의 분서(焚書) 때 제남(濟南)의 복생(伏生)이 벽 속에 숨겼던 상서를 한나라의 문제(文帝) 때 찾아낸 것으로, 선제(宣帝) 때 구양생(歐陽生)・하후승(夏候勝)・하후건(夏候建)이 훈석(訓釋)하였다. 이것을 금문상서라고 부르는 것은 서광(徐廣)의 사기음의(史記音義)에서 비롯되었는데, 경전석문(經典釋文), 상서정의(尙書正義) 등에서도 모두 이렇게 부르고 있다. 원래 100편이었으나 벽 속에서 찾은 것은 29편으로 올바르게 전승된 것이라고 한다. 우하서(虞夏書)・상서(商書)・주서(周書)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금문세성[金門歲星]  금문(金門)은 한(漢)나라 미앙궁(未央宮)의 대문인 금마문(金馬門)이다. 문 앞에 구리로 만든 말이 있으므로 이렇게 부르며, 조칙(詔勅)을 작성하는 문학의 선비들이 이 문으로 출입하였다. 세성(歲星)은 훌륭한 근신(近臣)을 뜻한다. 한(漢)나라 동방삭(東方朔)이 죽기 전에 “천하에 아무도 나를 아는 이가 없으니 나를 아는 자는 오직 태왕공(太王公)뿐이다.”라고 하였는데, 그가 죽은 후 무제(武帝)가 태왕공에게 물으니 “다른 별들은 모두 그대로 있는데 유독 세성이 보이지 않은 지 18년 만에 지금 다시 나타났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무제가 탄식하기를 “동방삭이 짐의 곁에 18년 동안이나 있었건만 그가 세성인 줄 몰랐구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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