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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불상[錦不傷]~금불여고[今不如古]~금붕호아[錦繃胡兒]


금불상[錦不傷]  지방관으로서 지방을 잘 다스림을 뜻한다. 춘추 시대 정(鄭) 나라 자피(子皮)가 윤하(尹何)를 읍재(邑宰)로 삼으려 하자, 자산(子産)이 윤하를 부적합하게 여기어 자피에게 말하기를 “그대에게 좋은 비단이 있다면 그것을 옷 지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 주어 옷 짓기를 배우도록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左傳 襄公三十一年>

금불속래 필성죄인[今不速來 必成罪人]  지금 빨리 오지 않으면 반드시 죄인이 됨을 이른다.

금불여고[今不如古]  지금이 옛날(지난날)보다 못함을 이른다.

금불주지 후필난도[今不誅之 後必難圖]  지금 이들을 죽이지 않으면 뒤에는 반드시 도모하기 어려울 것임을 이른다.

금붕[錦綳]  비단 묶음이라는 뜻으로, 죽순(竹筍)을 가리킨다.

금붕[錦繃]  비단 포대기 또는 비단속옷.

금붕과호추[錦繃裹胡雛]  양귀비(楊貴妃)가 안녹산을 총애하여 현종의 수양아들로 삼고는, 어양(漁陽)에 있던 안녹산을 불러다가 아이를 씻긴다고 하면서 궁녀들과 같이 수놓은 어린애 옷을 만들어 입힌 다음 포대기[錦繃]로 싸고는 웃고 떠들며 놀았다. 현종이 이를 보고는 ‘아이를 씻는 돈[洗兒錢]’이라고 하면서 100만 전(錢)을 하사하였다. 그런데 안녹산은 어양으로 돌아가서 곧바로 반란을 일으켰다. 호추(胡雛)는 안녹산을 가리키는데, 안녹산은 본디 오랑캐 종족이었으므로 이렇게 칭한 것이다.

금붕호아[錦繃胡兒]  호아(胡兒)는 원래 호인(胡人)의 아들이었던 안녹산을 가리킨다. 안녹산은 일찍 아비를 여의고 재가한 어미를 따라가 의부(義父)의 성을 따랐다. 그는 어려서 총명하여 육번어(六蕃語)에 모두 통하였으므로 유주 절도사(幽州節度使) 장수규(張守珪)의 편장(偏將)에 발탁되었다가 이윽고 평로사(平盧使)가 되어서는 입조하여 주대(奏對)한 것이 현종(玄宗)의 뜻에 맞아 총애를 받기 시작하여 마침내 궁중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또한 양귀비(楊貴妃)에게도 총애를 받아 그의 양자가 되겠다고 청하여 현종의 윤허까지 얻었다. 그래서 양귀비가 그를 양자로 삼은 뒤에는 그의 생일에 현종과 귀비가 의복, 보기(寶器), 주찬(酒饌) 등을 후히 내렸는데, 그로부터 3일 뒤에 귀비가 안녹산을 궁중으로 불러들여 비단으로 큰 포대기[錦繃]를 만들어서 안녹산을 싸서 궁인을 시켜 채여(彩輿)에 태우고 다니게 하니, 궁녀들이 그것을 보고 모두 왁자하게 웃어대므로 현종이 그 까닭을 묻자, 좌우에서 “귀비가 3일 만에 녹산 아이를 씻었답니다.[貴妃三日洗祿山兒]”라고 대답하므로, 현종이 친히 가서 보고는 매우 기뻐하여 귀비에게 세아전(洗兒錢)을 후히 내리기까지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세아전이란 아이를 낳은 지 3일, 혹은 1개월 만에 아이를 목욕시킬 때 친우들이 모여 경하하고 아이에게 주는 돈을 말한다. <新唐書 卷225 安祿山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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