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金山] 산 이름. 아이태산(阿爾泰山).
금산[金山] 산 이름이다. 강소성(江蘇省) 진강시(鎭江市) 서북쪽에 있으며 경치가 뛰어나 초산(焦山), 북고산(北固山)과 함께 진강삼산(鎭江三山)으로 불린다. 살도랄(薩都剌)의 시 강성완설(江城玩雪)에 “천 겹의 쇠항아리가 은항아리가 되더니, 하룻밤에 금산이 옥산으로 바뀌었네.[千重鐵瓮成銀瓮 一夜金山換玉山]”라고 하였다.
금산[金山] 경상도 김천을 가리킨다.
금산[金山] 금(金)의 맑고 부드러운 기운을 받아 산형(山形)이 둥근 산을 가리킨다. 그 용맥은 봉황이 춤을 추고 새가 나는 것 같은 모습이 많다.
금산[金山] 금산은 중국 강소성(江蘇省) 진강시(鎭江市) 서북쪽에 있는 산으로, 양자강(揚子江) 가운데 우뚝 서 있는데, 빼어난 경치가 천하의 제일이라 한다. 당나라 때 배두타(裴頭陀)라 불린 법해(法海) 화상이 산을 개간하다가 금을 얻었으므로 이 산의 이름을 금산(金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금산[金山] 산 이름이다. 요녕성(遼寧省) 강평현(康平縣)에 있는데 당(唐)의 설인귀(薛仁貴)가 고구려 군대를 그곳에서 격파하였다고 한다.
금산사[金山寺] 금산사(金山寺)는 동진(東晉) 때 창건된 사찰로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진강시(鎭江市) 서북쪽 금산(金山)에 있다. 예로부터 강남의 명승지로 유명하다. 민간의 전설인 백사전(白蛇傳)에 나오는 사찰이 이곳이다.
금산사[金山寺] 강소성(江蘇省) 진강시(鎭江市) 서북쪽 금산(金山) 위에 있는 절로, 동진(東晉) 때 창건된 중국의 대표적 선찰(禪刹)이다. 양자강(楊子江) 가운데 우뚝 서 있어 예로부터 택심사(澤心寺), 용유사(龍游寺)로도 불려 오다가 청 성조(淸聖祖) 때 강천사(江天寺)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송(宋) 나라 승려 요원(了元)과 소식(蘇軾)이 노닐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유금산사(游金山寺)와 금산 묘고대(金山妙高臺)라는 소식의 시가 전한다.
금산사[金山寺]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사찰 이름이다.
금산사대상[金山四大牀] 사대(四大)는 불교에서 세상의 만물을 이루는 근본이 되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의 네 가지를 말하며, 특히 인체(人體)를 가리키기도 한다. 송나라의 고승(高僧) 불인(佛印)이 일찍이 금산사(金山寺)에 있을 때, 본래부터 불인과 시(詩)로써 서로 사귀어 오던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불인을 뵙자, 불인이 말하기를 “내한(內翰)이 여기를 왜 왔는고? 여기는 앉을 곳이 없다.”고 하니, 소식이 장난삼아 말하기를 “화상(和尙)의 사대를 빌려 선상(禪牀)으로 삼고 싶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금산서호[金山西湖] 금산(金山)은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진강시(鎭江市) 북쪽에 있는 낮은 야산이고, 서호(西湖)는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항주시(杭州市) 서쪽에 있는 전당호(錢塘湖)이다.
금산조경[金山造綆] 송 고종(宋高宗) 때 금(金) 나라의 올출(兀朮)이 쳐들어오자, 한세충(韓世忠)이 황천탕(黃天蕩)에서 적군과 대치하게 되었다. 한세충은 금산(金山) 아래 해함(海艦)을 진출시키고 미리 쇠를 녹여 긴 쇠줄을 만든 다음 거기다가 큰 쇠갈고리를 꿰어 놓았다. 이를 용감하고 건장한 군졸에게 주고 배를 두 길로 나누어 적선의 배후로 나가서 갈고리로 적선을 꿰어 잡아당겨 쇠줄 하나로 적선 한 척씩을 침몰시켰다. <宋史 卷364>
금산철벽[金山鐵壁] 어떤 것이 매우 견고함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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