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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琴書]~금석[錦石]~금석[琴舃]~금석[金石]~금석[金錫]


금서[禁署]  궁중(宮中)의 근시(近侍)가 근무하는 관서(官署)이다.

금서[琴書]  거문고와 책으로 옛날 선비의 소일거리이자 필수품이었다. 거문고를 타는 것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말한다.

금서[琴書]  금서는 거문고와 서책인데, 이것들을 즐기며 지내는 전원의 흥취를 의미한다.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친척들과의 정담을 즐거워하고, 거문고와 서책을 즐기면서 시름을 푼다.[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라고 하였다.

금서[錦書]  전진(前秦)의 여류시인 소혜(蘇蕙)가 회문시(廻文詩)를 비단 위에 새겨 남편에게 전한 고사가 있다.

금서[禁署]  한림원을 가리킨다.

금서[金書]  금니(金泥)로 글씨를 쓰는 것을 말한다.

금서미궐흘[金絮縻厥紇]  궐흘(厥紇)은 돌궐(突厥)과 회흘(回紇)을 말한다. 당(唐) 나라에서 금과 면(綿)을 내려 두 오랑캐를 포섭했다.

금석[錦石]  비단 같은 돌 즉 아름다운 돌을 가리킨다.

금석[錦石]  화려한 무늬가 들어 있는 돌, 즉 미석(美石)을 가리킨다. 온자승(溫子升)의 시 도의(搗衣)에 “장안성 가을밤 길기도 한데, 여인들이 연노랑 비단을 다듬이질하네.[長安城中秋夜長 佳人錦石搗流黃]”라고 하였다.

금석[琴舃]  거문고와 부석(鳧舃)으로, 지방 수령을 가리키는 말이다. 거문고와 관련해서는 여씨춘추(呂氏春秋) 찰현(察賢)에 “복자천(宓子賤)은 선보(單父)의 수령이 되어 거문고만 타고 당(堂)을 내려오지 않았으나 선보가 잘 다스려졌다.”라고 하였고, 송(宋)나라의 어진 재상인 조변(趙抃)이 지방 장관으로 있다가 임기가 차서 돌아올 때 처음에 가지고 갔던 거문고와 학 한 마리만 가지고 왔다는 고사가 있다. <宋史 巻316 趙抃列傳> 부석과 관련해서는,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 하동(河東) 사람 왕교(王喬)가 멀리 섭(葉) 땅의 수령이 되었는데,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수레도 없이 대궐의 조회에 참석하므로 몰래 엿보게 하였는데, 오리 두 마리만이 동남쪽에서 날아오기에 그물로 잡아 보니 단지 신발 한 짝만 있었다는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82 方術列傳 王喬>

금석[金石]  쇠로 만든 종(鍾)과 돌로 만든 편경(編磬) 등의 악기를 이른다.

금석[金石]  금석지악(金石之樂)의 약칭으로, 대례(大禮) 때 연주하는 규모가 크고 완전한 음악이다. 금석(金石)은 종경(鍾磬)과 같다.

금석[金石]  종경(鐘磬)의 악기를 말한다. ‘金’은 종류(鐘類)의 악기를, ‘石’은 경류(磬類)의 악기를 뜻한다. 옛날 악기(樂器)는 여덟 가지 물건으로 만들었으니 금(金)・석(石)・사(絲)・죽(竹)・포(匏)・토(土)・혁(革)・목(木)이다.

금석[金石]  공덕(功德)을 전각(篆刻)하는 종정(鐘鼎)과 비석(碑石)을 이른다.

금석[金石]  돌이나 쇠처럼 단단하여 변하지 않는 교분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금석[金石]  쇠와 돌. 사물 또는 심지가 튼튼하거나 곧고 굳은 것을 가리킨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새기다 놓아버리면 썩은 나무도 부러뜨릴 수 없고, 새기다가 그만두지 않으면 쇠나 돌이라도 뚫을 수 있다.[鍥而舍之, 朽木不折 ; 鍥而不舍, 金石口鏤.]”라고 하였다.

금석[金石]  금석은 종과 경쇠를 가리킨다. 증자(曾子)가 위(衛)나라에 있을 때 3일이나 불을 때지 못하고 10년 동안 새 옷을 해 입지 못하는 가난한 생활을 했는데도, 신발을 끌고 상송(商頌)을 노래하자 청아한 노랫소리가 마치 금석에서 나오는 것과 같았다는 고사가 전해 온다. <莊子 讓王>

금석[金石]  단약의 이름이다.

금석[金錫]  지공(誌公)이란 중이 석장(錫杖)을 짚고 다녔는데, 도사(道士)인 백학도인(白鶴道人)과 절을 지을 터를 먼저 점령하기를 경쟁하여, 도사는 학을 보내고 지공은 석장을 날려 보내었더니, 석장이 먼저 가서 터를 빼앗았다 한다. 이 고사로써 중의 행차를 석(錫)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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