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언[金言] 진귀하고 값진 말이다.
금언체[禽言體] 금언(禽言)은 본디 새의 지저귀는 소리를 말하는데, 금언체(禽言體)의 시가 생긴 것은 송나라 시인 매요신(梅堯臣)의 금언시(禽言詩) 사수(四首)에서 비롯되었다. 매요신의 자는 성유(聖兪)인데, 소식(蘇軾)의 시 오금언(五禽言) 서(序)에 “매성유가 일찍이 사금언을 지었다. 내가 황주에 유배되어 정혜원에 우거하는데, 집 주위가 모두 무성한 숲에 빼어난 대나무와 황폐한 못가의 갈대 부들로 둘러싸여 봄여름 사이에는 울어 대는 새들이 종류가 하 많아서, 그 지방 사람들이 흔히 그 새 소리와 비슷한 말로 그 새를 이름하고 있으므로, 마침내 매성유의 시체를 사용하여 오금언을 짓는 바이다.[梅聖兪嘗作四禽言 余謫黃州寓居定惠院 遶舍皆茂林脩竹 荒池蒲葦 春夏之交 鳴鳥百族 土人多以其聲之似者名之 遂用聖兪體作五禽言]” 하였다.
금언패[禁言牌] 말하지 말라는 뜻을 새긴 나무조각. 탐음(貪淫)이 날로 심하던 연산군은 자기 신분에 대한 비방을 염려한 나머지 환관(宦官) 및 조신(朝臣)들에게 금언패를 차게 하였는데, 그 금언패에는 “입은 화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다물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몸이 편안하여 언제나 안온하리라.[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牢]”라는 중국 당나라 때 재상 풍도(馮道)는 설시(舌詩)가 쓰여 있었다 한다.
금여[金輿] 금여는 임금 또는 황제가 타는 수레를 이른다.
금여상식[金輿上食] 금여는 임금이 타는 수레이다. 한나라 무제(武帝)가 조회가 파한 뒤에 궁궐 안으로 들어가 태후(太后)에게 상식(上食)한 고사가 있다. <史記 卷107 魏其武安侯列傳>
금여획야[今汝畫也] 염구(冉求)가 “저는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힘이 부족합니다.”라고 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힘이 부족한 사람은 중도에 그만두니, 지금 너는 한계를 긋는 것이다.[力不足者 中道而廢 今汝畫也]”라고 하였다. <論語 雍也>
금연[琴硯] 금연(琴硯)은거문고 모양의 벼루를 말한다.
금연[錦緣] 비단으로 테를 두른 옷을 가리킨다. 예기(禮記) 왕조(王藻)에 “어린아이의 예절은 어른과 달라서 검은색 옷과 허리띠, 그리고 머리를 묶는 띠를 모두 붉은색 비단을 썼다.[童子之節也, 緇布衣錦緣, 錦紳, 并紐錦, 束髮皆朱錦也.]”라고 하였다.
금연[禁煙] ‘금화(禁火)’와 같은 말로, 한식(寒食)을 가리킨다. 옛 풍속에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가 되는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을 한식이라 하는데, 이날은 춘추 시대 진(晉)나라 개자추(介子推)가 면산(綿山)에서 불에 타 죽었으므로, 이를 애도하는 뜻에서 화식(火食)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春秋左氏傳 僖公24年> <史記 卷39 晉世家>
금연[禁煙] 연기를 금한다는 말로 한식절(寒食節)을 뜻한다. 춘추시대 진(晉) 나라 개지추(介之推)가 중이(重耳)를 따라 19년 동안 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중이와 함께 귀국하였는데, 중이가 왕이 된 뒤에 행한 논공행상(論功行賞)에 불만을 품고 면산(緜山)에 들어가 왕이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왕은 그가 나오게 하기 위해 산에 불을 질렀으나 끝내 나오지 않고 불타 죽으니, 왕은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가 죽은 날에는 불을 붙여 밥을 짓는 것을 금하고 찬밥을 먹도록 조처하였는데, 그것이 후세에 풍속이 되었다. <荊楚歲時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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