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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전[金華殿]~금화전[金花鈿]~금화전[金花牋]~금화조[金花詔]


금화전[金華殿]  금화전은 미앙궁(未央宮) 안에 있는 궁전으로, 서한(西漢) 때에 중상시(中常侍) 반백(班伯)이 이곳에서 강설(講說)을 하였으므로 경연을 가리키게 되었다.

금화전[金華殿]  경연(經筵)이나 서연(書筵)을 뜻한다. 원래 한나라 때 미앙궁(未央宮) 안에 있던 궁전의 이름인데, 성제(成帝)가 이곳에서 상서(尙書)와 논어(論語) 등을 강론하였으므로 후세에 경연이나 서연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금화전[金花鈿]  금화로 장식한 부인의 머리 장식을 가리킨다.

금화전[金花牋]  금화전(金花牋)은 금니(金泥)를 박은 가장 좋은 전지(牋紙)의 이름이다. 양태진외전(楊太眞外傳)에 의하면 당 현종(唐玄宗)이 일찍이 밤중에 양 귀비(楊貴妃)와 함께 모란을 완상하면서 갑자기 이귀년(李龜年)에게 명하여 이백(李白)에게 금화전을 내려서 청평사(淸平詞)를 짓게 했다고 한다.

금화제형[金華弟兄]  금화산(金華山)의 황초평(黃初平)과 황초기(黃初起) 형제를 이른다. 금화산은 절강성(浙江省) 금화시(金華市) 북쪽에 있는 산으로 산 위에 신선의 석실(石室)이 있다고 한다. 단계(丹溪) 사람 황초평(黃初平)이 열다섯 살에 양을 치다가 도사(道士)를 따라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로 가서 수도(修道)하였다. 그 후 40년 만에 형 황초기(黃初起)가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가 만났더니 양은 보이지 않고 흰 돌들만 있었다. 황초평이 “양들은 일어나라.”고 소리치자, 흰 돌들이 모두 수만 마리의 양으로 변했다고 한다. <神仙傳 黃初平>

금화조[金花詔]  소식(蘇軾)의 시에 “언젠가는 금화의 조서를 보게 될 것이니, 탕목읍(湯沐邑)을 하사받고 조청을 받들 수 있으리라.[會看金花詔 湯沐奉朝請]”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27 送程建用> 이에 대해서 해설한 송나라 왕십붕(王十朋)의 주에, 군부인(郡夫人)에게는 금화의 나지(羅紙)를 사용해서 탕목읍을 하사하고 조청(朝請)을 받들게 하는데, 이는 그야말로 어버이를 받드는 영광스러운 일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東坡詩集註 卷16 送程建用> 조청은 봄과 가을의 조회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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