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란[及亂] 급란은 논어(論語) 향당(鄕黨)에 “술은 일정한 양이 없이 잡수시되, 어지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하셨다.[唯酒無量, 不及亂.]”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급류용퇴[急流勇退] 관원으로 있으면서 뜻을 얻었을 때 즉시 물러나서 명철보신(明哲保身)하는 것을 말한다. 송(宋)나라의 전약수(錢若水)가 진단(陳摶)을 찾아갔을 때 진단이 어떤 노승(老僧)과 함께 화로를 끼고 앉아 있었다. 그 노승이 전약수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부젓가락으로 ‘주부득(做不得)’이라고 세 글자를 쓰고는 말하기를 “이는 급류 속에서 용퇴할 사람이다.[急流中勇退人也]”라고 하였는데, 그 뜻은 전약수가 신선(神仙)은 되지 못하지만 오랫동안 벼슬살이에 연연하지는 않을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뒤에 전약수의 관직이 추밀 부사(樞密副使)에 이르렀는데, 나이 40에 물러나서 쉬었다. <邵氏聞見錄 卷7>
급류용퇴[急流勇退] 벼슬에서 일찌감치 물러난 것을 이른다. 송(宋)나라 때 한 노승이 전약수(錢若水)를 보고 ‘주부득(做不得)’ 3글자를 부젓가락으로 쓰고서는 “급류 속에서 용감하게 물러날 수 있는 사람이다.[是急流中勇退人也.]”라고 말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전약수가 신선이 될 수도 없지만 벼슬살이에도 오래 미련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뒤에 전약수는 벼슬이 추밀부사(樞密副使)에 이르렀을 때 40세의 나이로 벼슬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39 技藝部 說相者 急流勇退>
급류용퇴[急流勇退] 벼슬자리를 단연 버리고 과감하게 물러나는 것이 급류를 건넘과 같이 용감(勇敢)함을 이르는 말이다. 송나라 전약수(錢若水)에 대해서 어떤 도승(道僧)이 “급류 속에서 용감하게 물러날 수 있는 사람이다.[是急流中勇退人也]”라고 평하였는데, 과연 그가 추밀 부사(樞密副使)에 이르렀을 때 40세도 안 된 나이로 관직에서 물러났다는 일화가 송나라 소백온(邵伯溫)이 지은 문견전록(聞見前錄) 권7에 나온다. 참고로 송나라 대복고(戴復古)의 시에 “오자서(伍子胥)처럼 날이 저물자 거꾸로 행했던 패도(覇道)는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전약수처럼 급류 속에서 용감하게 물러나는 것이야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日暮倒行非我事 急流勇退有何難]”라는 구절이 나온다. <石屛詩集 卷5 曾雲巢同相勉李玉澗不赴召>
급류용퇴[急流勇退] 송나라 때 한 도승(道僧)이 진단(陳摶)에게 전약수(錢若水)의 사람됨을 가지고 말하기를 “그는 급류 속에서 용감히 물러날 수 있는 사람이다.[是急流中勇退人也]”라고 했는데, 뒤에 과연 전약수가 벼슬이 추밀 부사(樞密副使)에 이르렀을 때 40세도 채 안 된 나이로 용감하게 관직에서 물러났던 데서 온 말로, 곧 관로(官路)가 한창 트인 때에 용감하게 은퇴하는 것을 말한다. <宋名臣言行錄>
급류퇴[急流退] 관원으로 있으면서 뜻을 얻었을 때 즉시 물러나서 명철보신(明哲保身)하는 것을 말한다. 송(宋) 나라의 전약수(錢若水)가 진박(陳搏)을 찾아갔을 때 진박이 어떤 노승(老僧)과 함께 화로를 끼고 앉아 있었다. 그 노승이 전약수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는 부젓가락으로 ‘주부득(做不得)’이라고 세 글자를 쓰고는 말하기를 “이는 급류 속에서 용퇴할 사람이다.”하였는데, 그 뜻은 전약수가 신선(神仙)은 되지 못하지만 오랫동안 벼슬살이에 연연해하지는 않을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뒤에 전약수의 관직이 추밀부사(樞密副使)에 이르렀는데, 나이 40에 물러나서 쉬었다. <聞見前錄 卷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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