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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암지당[汲黯之戇]~급암지직[汲黯之直]~급암한소[汲黯韓韶]


급암조칙[汲黯詔勅]  전한(前漢) 때의 직신(直臣) 급암은 왕명으로 지방을 순시하다가 하남(河南)에 이르렀을 때, 그 지방 백성들이 크나큰 굶주림에 처하여 혹은 부자(父子)간에 서로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급암이 조칙(詔勅)을 가칭하여 그 곳 관창을 열어서 백성들을 구제하고, 돌아와서 임금에게 조칙을 가칭한 죄에 대하여 처벌받기를 청했으나, 임금이 그를 어질게 여겨 용서했다. <漢書 卷五十>

급암지당[汲黯之戇]  거리낌없이 직간함을 비유한 말이다. 급암(汲黯)은 한 무제(漢武帝) 때에 직신(直臣)으로 이름이 높았는데, 무제가 일찍이 천하에 인의(仁義)를 베풀고자 한다는 등의 말을 했을 때, 급암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속으로는 욕심이 많으면서 겉으로만 인의를 베풀어가지고 어떻게 요순의 정치를 본받으려 한단 말입니까.[陛下內多欲而外施仁義 奈何欲效唐虞之治乎]”라고 하므로, 무제가 노하여 얼굴을 붉히고 조회(朝會)를 파하자, 공경(公卿)들이 모두 급암을 위해서 두렵게 생각했는데, 무제는 물러가서 다른 사람에게 이르기를 “심하다, 급암의 우직함이여.[甚矣 汲黯之戇也]”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史略 卷2 西漢>

급암지당[汲黯之戇]  급암(汲黯)은 한 무제(漢武帝) 때의 직신(直臣)으로, 무제가 일찍이 문사(文士)를 불러놓고 천하에 인의(仁義)를 베풀고자 한다는 포부를 말하자, 급암이 “폐하께서는 속으로 욕심이 많은데, 겉으로만 인의를 베풀어서야 어떻게 요순의 정치를 본받는단 말입니까.[陛下內多欲而外施仁義 奈何欲效唐虞之治乎]”라고 하였다. 이에 무제가 노하여 조회(朝會)를 파하면서 “심하다, 급암의 우직함이여.[甚矣 汲黯之戇也]”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그러나 나중에 무제는 “옛날에 사직신(社稷臣)이 있었는데, 아마 급암이 비슷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훗날 무제가 급암을 회양 태수(淮陽太守)로 임명하자, 급암은 외직보다 내직에 있으면서 임금의 부족함을 간언하겠다고 부임하기를 주저하였다. 이에 무제는 “그대의 중망(重望)을 얻어 누워서 다스리게 되길 바란다. 내 곧 그대를 다시 부를 것이다.”라고 하며 보냈으나 급암은 10년 동안 회양 태수로 있다가 임소(任所)에서 죽었다. <史記 卷120 汲黯列傳>

급암지언[汲黯之言]  한 무제(漢武帝) 때의 직신이다. 구경(九卿)으로 있으면서 임금 면전에서 거침없이 바른말을 하였다. 뒤에 모함을 받아 외직으로 쫓겨나 오래도록 접견하지 못했다. 이에 무제는 “내가 오래도록 급암의 직언을 듣지 못하여, 지금에 다시 망발을 하는구나.[吾久不聞汲黯之言 今又復妄發矣]”라고 하였다. 그러나 급암은 끝내 회양 태수(淮陽太守)로 있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 <漢書 卷20 張馮汲鄭傳>

급암지직[汲黯之直]  성격이 강직하여 곧은 말을 잘하는 것을 뜻한다. 한 무제(漢武帝)가 갓을 벗고 있었는데, 급암(汲黯)이 곧은 말을 잘하므로 그것을 지적할까 두려워 장막 속으로 피하여 그 말을 가하다고 윤허했다 한다.

급암직언[汲黯直言]  자기 몸의 안전을 생각지 않고 임금에게 바른말을 하는 곧음을 뜻한다. 급암(汲黯)은 한 무제(漢武帝) 때 구경(九卿)으로 있으면서 감히 임금 면전에서 거침없이 바른말을 하였는데, 무제가 겉으로는 경외(敬畏)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뒤에 외직으로 쫓겨나 회양 태수(淮陽太守)로 있다가 죽었다. <史記 卷120 汲黯列傳>

급암한소[汲黯韓韶]  급암(汲黯)은 한 무제(漢武帝) 때의 강직한 현신(賢臣)이고, 한소(韓韶)는 자가 중황(仲黃)으로 후한(後漢) 때 사람이다. 급암은 하내(河內)에 어사(御史)로 갔을 때, 형편상 편의대로 창고의 곡식을 내어 빈민을 진휼하고 나서 조정의 명을 빙자해 일을 처리한 데 대한 벌을 받을 것을 청하니, 무제가 현명하게 여겨 용서해 주었다. 한소는 영장(嬴長)이 되었을 때, 임의로 창고를 열어 유민(流民)들을 구제했다. <史記 卷120 汲黯列傳> <後漢書 卷62 韓韶列傳>

급암호직[汲黯好直]  급암(汲黯)은 간신(諫臣)으로 이름난 자이다. 급암은 한 무제(漢武帝) 때 구경(九卿)으로 있으면서 감히 임금 면전에서 거침없이 바른말을 하였는데, 무제가 겉으로는 경외(敬畏)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뒤에 외직으로 쫓겨나 회양 태수(淮陽太守)로 있다가 죽었다. <史記 卷120 汲黯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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