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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처백모[伋妻白母]~급총서[汲冢書]~급총주서[汲冢周書]


급처백모[伋妻白母]  아버지의 처가 되면 그 자식의 어머니가 된다는 뜻이다. 급(伋)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이름이고 백(白)은 자사의 아들이다. 백이 쫓겨난 어머니[出母]가 죽었을 때 상복(喪服)을 입지 않은 것에 대해 자사가 “급(伋)의 처가 되는 사람이 바로 백(白)의 어머니인 것이요, 급의 처가 되지 않은 사람은 백의 어머니가 되지 않는다.[爲伋也妻者 是爲白也母 不爲伋也妻者 是不爲白也母]”라고 하였다. 이 말은 원래 쫓겨난 어머니는 아버지의 아내가 아니므로 어머니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禮記 檀弓上>

급천앵도[及薦櫻桃]  음력 5월인 중하(仲夏)를 뜻한다. 예기(禮記) 월령(月令) 중하지월(仲夏之月) 조(條)에 “함도(含桃)로써 제수를 삼되 침묘(寢廟)에 먼저 올린다.[羞以含桃 先薦寢廟]”고 하였다. 함도는 앵도이다. 두보(杜甫)의 수경(收京)에 “돌아갈 때는 앵도 올릴 철에 미치리.[歸及薦櫻桃]”라고 하였다.

급청상[汲淸湘]  깨끗한 상수(湘水)의 물을 긷는다. 상수(湘水)는 광서(廣西) 장족(壯族) 자치구에서 흘러나와 후난 성(省)을 북으로 흘러, 소수(瀟水)와 합류하여 동정호(洞庭湖)에 흘러들어간다.

급체포[急遞舖]  금(金), 원(元), 명(明) 때 문서를 전송하던 역참을 말한다. 10리, 15리, 25리마다 1개씩 설치하였고, 각 포에는 포사(鋪司) 1인과 포병(舖兵) 4인을 두었다.

급총[汲冢]  급총서(汲冢書)의 준말로 진(晉) 나라 시대에 급군(汲郡) 사람 부준(不準)이 위(魏) 나라 양왕(襄王), 혹은 일설에 안희왕(安釐王)의 고총(古塚)을 발굴해 얻은 선진(先秦) 때의 고서(古書)를 말하는데, 현존하는 것으로는 주서(周書)・죽서기년(竹書紀年)・목천자전(穆天子傳)이 있다.

급총[汲冢]  진(晉)나라 태강(太康) 2년(281)에 급군(汲郡) 사람 부준(不準)이 도굴한 전국 시대 위양왕(魏襄王)의 무덤을 말한다. 이 무덤에서 선진(先秦)의 과두문자(蝌蚪文字)로 기록된 죽간(竹簡)의 고서(古書) 75편을 얻었는데, 이를 급총주서(汲冢周書) 혹은 줄여서 급총서(汲冢書)라고 한다.

급총서[汲冢書]  진(晉) 나라 때 급군(汲郡)의 고총(古塚)에서 발굴된 선진(先秦)의 고서(古書)를 말한다. 거기에는 하(夏) 나라 이후로 주 유왕(周幽王)이 견융(犬戎)에게 멸망당한 사실들이 기록되었다. <晉書 卷51 束晳列傳>

급총서[汲冢書]  진(晉)나라 태강(太康) 2년(281)에 급군(汲郡) 사람인 부준(不準)이 위 양왕(魏襄王)의 묘(墓)를 도굴하면서 얻은 수레 수십 대 분량의 죽서(竹書)를 이른다. 기년(紀年)・역경(易經)・역주음양괘(易繇陰陽卦)・괘하역경(卦下易經)・공손단(公孫段)・국어(國語)・명(名)・사춘(師春)・쇄어(瑣語)・양구장(梁丘藏)・격서(繳書)・생봉(生封)・대력(大曆)・목천자전(穆天子傳)・도시(圖詩) 및 잡서인 주식전법(周食田法)・주서(周書)・논초사(論楚事)・주목왕미인성희사사(周穆王美人盛姬死事) 등 모두 75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선진(先秦)의 과두문자(蝌蚪文字)로 되어 있다. 진 무제(晉武帝)가 순욱(荀勗)에게 편찬하도록 하여 중경(中經)이라 하였는데, 원래의 죽간은 이미 전하지 않는다. 진서(晉書) 무제기(武帝紀)에는 “함녕(咸寧) 5년(279)에 소전(小篆)으로 된 고서(古書) 10여만 자를 얻었다.”로 되어 있다. <晉書 卷3 武帝紀, 卷39 荀勗列傳, 卷51 束晳列傳>

급총주서[汲冢周書]  진(晉) 나라 때 급군(汲郡)사람 부준(不準)이 위양왕(魏襄王)의 무덤을 파서 얻었다는 선진(先秦) 시대의 고서(古書)이다. 안사고(顏師古)가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의 주서(周書)71편에, ‘공자의 산서(刪書)한 나머지’라고 주석했기 때문에, 뒤에 일주서(逸周書)라고 일컫는다.

급총죽서[汲冢竹書]  진(晉)나라 태강(太康) 2년(281)에 급군(汲郡) 사람 부준(不準)이 위(魏)나라 양왕(襄王)의 무덤을 발굴하여 얻었다는 선진(先秦)의 고서(古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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