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려멱려[騎驢覔驢] 회암집(晦庵集) 권64 답혹인(答或人)에 “이것이 병인 줄 알았다면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곧 약이니, 무슨 연유로 이렇게 되었는가 묻는다면 이는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는 격이라 하나의 한가로운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知得如此是病 卽便不如此是藥 若更問何由得如此 則是騎驢覔驢 只成一塲閑說話矣]”라고 보인다.
기려멱려[騎驢覔驢] 범부가 자기 마음속의 불성(佛性)을 알지 못하고서 밖에서만 찾으려 하는 것을 비유하는 선종(禪宗)의 말이다. 기우멱우(騎牛覓牛)라고도 한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지공화상대승찬(志公和尚大乘贊)에 “즉심즉불(卽心卽佛)을 알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노새를 타고서 노새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不解即心即佛 真似騎驢覔驢]”라는 말이 나온다.
기려멱려[騎驢覓驢] 송(宋)나라 도원(道原)의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28에 “불경을 읽으면서 의미를 살피지 않는다면 실로 나귀를 타고서 다시 나귀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誦經不見有無義, 眞似騎驢更覓驢.]”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자신이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의 비유로 쓰인다.
기려멱려[騎驢覓驢]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도 도리어 밖에서 구하는 것을 비유한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지공화상대승찬(志公和尙大乘贊)에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진실로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는 것과 같다.[不解卽心卽佛 眞似騎驢覓驢]”라고 하였다. 또 황정견(黃庭堅)의 시 기황룡청로(寄黃龍淸老)에 “당나귀를 타고 당나귀를 찾으니 가소롭고, 말도 아닌데 말에 비유함도 어리석음이리라. 한 하늘의 달빛은 누굴 위해 아름다운가, 두 늙은이의 풍류는 단지 스스로만 알리라.[騎驢覓驢但可笑, 非馬喩馬亦成痴. 一天月色爲誰好, 二老風流只自知.]”라고 하였다.
기려색구[騎驢索句] 성당(盛唐)의 시인 맹호연(孟浩然)이 일찍이 좋은 시를 지으려고 고심하다가 나귀 등에 타고서 눈발이 휘날리는 파교(灞橋) 위를 지나갈 때에야 그럴듯한 시상이 떠올랐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 송(宋)나라 소식(蘇軾)이 증사진하충수재(贈寫眞何充秀才)라는 시에서 “또 보지 못했는가, 눈 속에서 나귀를 탄 맹호연이, 눈썹을 찌푸리고 시를 읊느라 어깨가 산처럼 솟은 것을.[又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이라고 읊었다. 또 당 소종(唐昭宗) 때의 재상 정계(鄭綮) 또한 시를 잘 지었는데, 혹자가 정계에게 “상국은 요즘 새로 지은 시가 있는가?[相國近有新詩否?]”라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시상이 눈보라 치는 파교의 당나귀 등 위에 있는데, 이런 곳에서 어떻게 시를 얻을 수 있겠는가.[詩思在灞橋風雪中驢子上, 此處何以得之?]”라고 하였다. 후에 이를 ‘답설심매(踏雪尋梅)’ 또는 ‘기려색구(騎驢索句)’라 하여 시인이 풍경을 사랑하여 고심하며 시를 짓는 흥취를 형용하게 되었다.
기려어사[騎驢御史] 명나라 이전엔 어사(御史)가 모두 나귀를 타고 다녔는데, 명나라 선종(宣宗) 연간에 어사 호지(胡智)가 말하기를 “한 지방을 순시할 경우 어사는 조정에서 차견(差遣)한 사람으로 그 지위가 삼사(三司)의 관원보다 위에 있거나 같습니다. 그런데 삼사는 나가서 공무를 집행할 때 모두 말을 타는데 어사만 유독 나귀를 타니 자못 위의를 잃은 것입니다. 지금부터 역마를 타게 하소서.”라고 하니, 이를 허락하였다. <淵鑑類函 卷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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