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준[耆壽俊] 서경(書經) 문후지명(文侯之命)에 ‘노성한 자와 준걸한 인재가 신하의 자리에 있다.[耆壽俊 在厥服]’라고 한 것에 근거를 둔 표현이다.
기수지분[棄繻之憤] 기수(棄繻)의 비분(悲憤)이란, 한나라 종군(終軍)이 일찍이 미천했을 때 한번은 걸어서 관문(關門)을 지나는데, 관리(關吏)가 그에게 부신(符信)으로 사용하는 명주 조각을 주므로, 종군이 이게 무엇이냐고 묻자, 관리가 말하기를 “부신으로 되돌려 받기 위해서이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종군이 말하기를 “대장부가 서쪽으로 나가 노닐거든 끝내 부신을 되돌려 주러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大丈夫西遊 終不復傳還]”라 하고, 그 명주 조각을 버리고 떠났다가, 그 후 마침내 알자(謁者)가 되어 군국(郡國)을 순행차 부절(符節)을 갖고 다시 동쪽으로 관문을 나가려 하자, 관리가 종군을 알아보고 말하기를 “이 사자가 바로 전번에 부신을 버린 사람이다.[此使者乃前棄繻生也]”라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남아의 장대한 기백을 뜻한다.
기수지세[騎獸之勢] 맹수를 타고 달리는 기세(氣勢)라는 뜻으로, 도중(途中)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서거나 할 수 없는 형세(形勢)를 이르는 말이다. 기호지세(騎虎之勢).
기수체충[氣帥體充]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 上)의 “뜻은 기운의 장수요, 기운은 몸에 채워져 있는 것이다.[夫志 氣之帥也 氣 體之充也]”에서 온 말이다.
기수총림[祇樹叢林] 기수는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의 준말로 석가가 활동하던 지역인 중인도(中印度) 사위성(舍衛城) 남쪽 1만 리 거리에 있는 절이다. 원래 기타태자(祇陀太子)가 소유한 땅을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가 절을 지어 석가에게 바쳤으므로 그 두 사람의 이름을 합하여 이름을 붙였다 한다. 일반적으로 절의 이칭으로 쓰인다. 총림 역시 승려들이 모여 사는 절을 뜻한다.
기수춘삼[沂水春衫] 공자(孔子)가 자로(子路), 증점(曾點), 염유(冉有), 공서화(公西華) 등의 제자에게 각각 자기의 뜻을 말해 보라고 하여, 다른 제자들이 다 말을 마친 다음에 공자가 다시 증점에게 묻기를 “점아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點爾何如]”라고 하자, 증점이 이때 비파(琵琶)를 천천히 타고 있다가 쟁그랑 소리와 함께 비파를 내려놓고 대답하기를 “저는 앞의 세 사람이 말한 바와는 다릅니다.……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5, 6인, 동자 6, 7인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읊조리며 돌아오겠습니다.[異乎三子者之撰……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기수춘풍[沂水春風]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신의 뜻을 말하라는 공자의 명에 슬(瑟)을 울리다 말고 “늦은 봄날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어른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沂水)에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다.”라고 하자 공자가 그의 쇄락(灑落)한 기상을 인정했다. <論語 先進>
기수후생[棄繻後生] 한나라 종군(終軍)은 장안으로 가려고 함곡관을 들어서는데, 관을 지키던 관리가 종군에게 수(繻), 곧 비단으로 만든 일종의 통행증을 주자 “‘대장부가 사방을 유람함은 반드시 공명을 이루기 위함인데, 관을 나섬에 이 물건이 무슨 쓸모란 말인가!’ 하고는 수를 버리고 갔다. 종군은 장안에 들어가 알자가 되어서 명을 받들고 군국을 순행하게 되었는데, 부절을 들고 동으로 가 함곡관에 이르자 관을 지키던 관리가 그를 알아보더니 ‘이 사자는 전번에 수를 버리고 떠난 후생이다!’라고 하였다.[‘大丈四遊, 必取功名, 出關何用此物!’ 棄繻而去. 終軍至長安為謁者, 受命巡行郡國, 持節東至函谷關. 關吏識之, 道: ‘此使者原是此前棄繻後生!’]”라고 하였다. <漢書 終軍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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