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자기리 부동금수자망기이[其慈子嗜利 不同禽獸者亡幾耳] 한서(漢書) 가의전(賈誼傳)에 “자식을 사랑하고 이익을 좋아하니, 금수와 다른 것이 거의 없다.[其慈子嗜利 不同禽獸者亡幾耳]”라고 보이는데, 신서(新書)에는 “자식을 사랑하고 이익을 좋아하지만 부모는 홀대한다. 그러나 이것이 윤리 도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 바로 이 점에서만 금수와 다를 뿐이다.[其慈子嗜利, 而輕簡父母也. 慮非有倫理也, 其不同禽獸勤焉耳.]”라고 되어 있어, 조금 차이가 있다. <漢書 卷48 賈誼傳> <新書 卷3 時變>
기자전[箕子殿] 평안도 용강면에 1721년 경종 때 건립한 기자 영전이 있었다.
기자정전[箕子井田] 기자(箕子)가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정전제(井田制)를 시행했다고 하는데, 조선 전기까지도 평양의 외성(外城) 안에 그 유적이 완연하게 남아 있다는 기록이 전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51 平安道 平壤府>
기자조[箕子操] 금곡(琴曲)의 이름으로, 은(殷) 나라 기자(箕子)가 주(紂)의 음일(淫泆)을 간하였으나, 듣지 않으므로, 거짓 미친 체하여 종이 되어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슬퍼하여 거문고를 타서 이 노래를 지었다 한다.
기자종무후[棄子終無後] 진인(晉人) 등유(鄧攸)의 자가 백도(伯道)이다. 하동 태수(河東太守)로 있을 때 석륵(石勒)의 난리를 만나서 처자와 조카를 데리고 피난하다가 도중에서 적을 만나 아들과 조카를 모두 데리고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죽은 아우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버렸다. 뒤에 자기는 다시 아들을 낳지 못하여 대가 끊어졌다. <晉書 鄧攸傳>
기자지명이[箕子之明夷] 주역(周易) 명이괘(明夷卦) 육오(六五)의 효사(爻辭)이다. 명이(明夷)는 우매한 자가 군주로 있을 때 현인이 자신의 능력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면 상처를 받는다는 뜻이다. 명(明)은 ‘태양’이고 이(夷)는 ‘소멸되다, 묻히다’의 뜻으로 태양이 땅속으로 들어간 것을 가리키는데, 이것으로 현자(賢者)가 구금되거나 폄척당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주역(周易)의 명이괘(明夷卦) 육오(六五)에 “육오는 기자가 밝음을 감춤이니, 곧게 지킴이 이롭다.[六五 箕子之明夷 利貞]”라고 하였다. 기자(箕子)가 그와 같이 처신하였으므로 한 말이다. 기자(箕子)가 은(殷)나라가 무도(無道)할 때 밝음을 감추어 화를 면하였고, 마침내 동방으로 와서 도를 전하였다 한다.
기작[鬿雀] 북호산(北號山)에 있다는 새 이름이다. 산해경(山海經) 동산경(東山經)에 “북호산은 북해와 가까이 마주하고 있다. 여기 있는 새는, 그 모양이 머리가 흰 닭과 같고, 쥐의 발에 범의 발톱이 달렸으며, 그 이름을 기작이라 하는데, 또한 사람을 잡아먹는다.[北號之山, 臨于北海. 有鳥焉, 其狀如雞而白首, 鼠足而虎爪, 其名曰鬿雀, 亦食人.]”라고 하였다.
기작위[妓作圍] 기녀들을 둘러 세워서 병풍으로 삼은 것을 말한다.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에 의하면, 신왕(申王)은 매양 눈보라가 치고 몹시 추운 겨울철이 되면 궁기(宮妓)들을 좌석 곁에 빽빽이 둘러서게 하여 어한(禦寒)을 하면서 스스로 이를 기위(妓圍)라고 불렀다는 데서 온 말이다.
기잠[機緘] 사물이 변화하는 긴요한 구석, 관건(關鍵). 혹은 기관(機關)을 열고 닫는 것으로 사물의 변화를 이끄는 힘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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