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민루[樂民樓] 함흥부(咸興府)의 성(城) 서쪽 2리 성천강(成川江) 가에 있는 누대이다. 1607년(선조40)에 장만(張晩)이 함경도 관찰사가 되었을 때 만든 누대로, 전란으로 소실된 낙민정(樂民亭) 터에 새로 세워 아래에는 포루(砲樓)를, 위에는 연각(燕閣)을 마련하였다. 역사를 하는 동안 백성들이 괴로워하지 않고, 역사를 마치고는 모두 기뻐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이 편액한 것이다. 그 아래에는 만세교(萬歲橋)가 있다. <文獻指掌編 咸興府><象村集 卷23 樂民樓記, 韓國文集叢刊 72輯>
낙민루[樂民樓] 함경도 함흥(咸興)에 있는 누각 이름으로 원래 낙민정(樂民亭)이 있던 터인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때 낙서(洛西) 장만(張晩)이 세우고 낙민루라고 편액하였다. 누각 앞으로 성천강(成川江)이 흐른다. <藥泉集 第28卷 咸興十景圖記 樂民樓>
낙민문자[洛閩文字] 낙(洛)은 낙양(洛陽)의 정호(程顥)・정이(程頤), 민(閩)은 민중(閩中)의 주희(朱熹)로 모두 성리학을 연구하였는데, 이들의 저서인 이정전서(二程全書)와 주자대전(朱子大全) 및 주자어류(朱子語類) 등을 가리킨다.
낙민지락[樂民之樂] 맹자가 제 선왕(齊宣王)에게 “백성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는 자는 백성도 그 즐거움을 즐거워하고, 백성의 근심을 근심하는 자는 백성도 그 근심을 근심한다.[樂民之樂者 民亦樂其樂. 憂民之憂者 民亦憂其憂]”라고 하였다. <孟子 梁惠王下>
낙민지학[洛閩之學] 낙민(洛閩)의 학문. 염락관민(濂洛關閩)의 학문을 말한다. 염계(濂溪)의 주돈이(周敦頤), 낙양(洛陽)의 정자(程子), 관중(關中)의 장재(張載), 민중(閩中)의 주자를 통칭한 것으로 곧 송대의 성리학을 뜻한다.
낙민지학[洛閩之學] 낙민(洛閩)의 학문. 정주학(程朱學)을 말한다. 낙(洛)은 낙양(洛陽)의 정호(程顥)・정이(程頤) 형제를 가리키고, 민(閩)은 민중(閩中)의 주희(朱熹)를 가리킨다.
낙반소[樂飯疏] 가난한 생활에 만족하는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나물밥 먹고 물 마시며 팔을 베고 눕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가운데에 있다.[飯素食 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라고 하였다.
낙발[落髮] 머리를 깎고 중이 되는 것을 말한다.
낙발설[落髮說] 낙발은 머리를 깎고 중이 되는 것을 이른다. 이이(李珥)가 소년 시절에 어머니 사임당 신씨의 죽음을 겪고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 나머지 부교리(副校理)를 사직하고 금강산에 들어가 불경을 공부한 일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이이가 머리를 깎았는지의 여부가 계속 세상의 논쟁거리로 되어 왔다.
낙발위승[落髮爲僧] 머리를 깎고 중이 됨. 삭발위승(削髮爲僧).
낙방[落榜] 합격자의 성명을 적은 방(榜)에 자기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과거(科擧)에 떨어지는 것. 시험・모집・선거 등에 응하였다가 떨어지는 것. 낙과(落科). 낙제(落第). 하제(下第).
낙방거자[落榜擧子] 과거(科擧)에 떨어진 선비. 어떤 일에 한몫 끼이려다가 따돌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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