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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본[落本]~낙봉[落鳳]~낙불사촉[樂不思蜀]~낙불위피[樂不爲疲]


낙병[酪甁]  우윳병. 타락병.

낙본[落本]  손해보다. 밑지다. 본전(本錢)에서 밑지거나 손해(損害)를 봄.

낙봉[駱峰]  낙봉은 서울의 동대문 밖에 있는 산 이름이다.

낙봉[落鳳]  촉한(蜀漢)의 군사(軍師)인 방통(龐統)이 서천(西川)을 정벌할 때 낙성(洛城)에서 난전(亂箭)에 맞아 전사하였다. 방통의 별호가 봉추(鳳雛)이기 때문에 그가 죽은 곳을 낙봉파(落鳳坡)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방통(龐統)은 중국 삼국시대(三國時代)의 모사(謀士)이다. 제갈량(諸葛亮)에 버금가는 지략가로, 유비(劉備)를 도와 활약하였다.

낙부천명부해의[樂夫天命復奚疑]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애오라지 조화를 따라 죽음으로 돌아가리니, 천명을 즐길 뿐 다시 그 무엇을 의심하랴.[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낙북[洛北]  한강의 북쪽으로 곧 서울을 뜻한다.

낙불사촉[樂不思蜀]  안락하여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잊다. 즐거운 나머지 촉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로 눈앞의 쾌락에 탐닉하여 자기 본분을 망각한다는 의미이다. 삼국지(三國志)의 촉서후주선전(蜀書後主禪傳)에 보인다. 촉(蜀)나라의 황제 유비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유선(劉禪)이 뒤를 이었다. 제갈량(諸葛亮) 등 중신(重臣)마저 세상을 떠난 뒤, 무능한 유선은 나라를 보전하지 못하였다. 위(魏)나라가 침공하자 스스로 손목을 묶고 성문을 열어 투항하였다. 위나라 왕은 유선을 안락공(安樂公)으로 봉하고, 위나라의 도읍에 살게 하였다. 하루는 위나라의 대장군 사마소(司馬昭)가 연회를 열어 유선을 초대하고는 촉나라의 음악을 연주하게 하였다. 유선을 수행한 촉나라 사람들은 모두 그 음악을 듣고 고향 생각에 애틋한 기색이 역력하였으나, 유선만은 전혀 슬픈 기색이 없이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사마소가 그 모습을 보고 수하인 가충(賈充)에게 “사람이 저리도 무정하니, 설령 제갈량이 살아 있더라도 오래 보좌할 수 없겠거늘 하물며 강유(姜維) 정도야 말해 무엇하겠나”라고 말하며 혀를 찼다. 사마소는 마냥 즐거워하는 유선에게 고국 촉나라가 그립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유선은 “이렇게 즐거우니 촉나라는 생각나지 않습니다.[此間樂, 不思蜀.]”라고 대답하였다. 유선을 수행한 극정(郤正)이 이 말을 듣고 남몰래 유선에게 “만일 다시 물으면 눈물을 흘리면서 ‘선친의 묘가 멀리 촉 땅에 있으니 서쪽만 바라보아도 슬퍼져서 하루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다’고 대답하셔야 합니다.”라고 가르쳐주었다. 유선이 자리로 돌아오자 사마소가 다시 촉나라가 그립지 않냐고 물었다. 유선은 극정이 일러준 대로 말하고는 억지로 눈물을 흘리려고 하였으나 눈물이 나오지 않아 눈을 감아 버렸다. 사마소가 “어찌하여 극정이 하는 말과 똑같은 거요?”라고 말하자, 유선이 흠칫 놀라 눈을 뜨고 사마소를 바라보며 “참으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그를 비웃었다고 한다.

낙불위피[樂不爲疲]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가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국사(國事)에 여념이 없는 것을 보고 태자가 ‘정신을 아끼고 편안히 지내라[願颐愛精神, 優游自寧.]’고 간언(諫言)하자, 그가 말하기를 “나는 이를 좋아하니, 피곤하지 않다.[我自樂此, 不爲疲也.]”고 하였다. <後漢書 卷1 光武帝紀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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