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비[洛碑] 낙비는 당체비(棠棣碑)를 말한다. 당나라 낙주(洛州)의 자사(刺史) 가돈이(賈敦頤)의 비와 그 아우 낙주의 장사(長史) 가돈실(賈敦實)의 비가 나란히 낙주의 시가에 세워졌다. 백성들이 두 사람의 치적을 사모하여 전후로 세운 것인데, 당체비(棠棣碑)라고 불렀다. 당체(棠棣)는 산앵두나무인데, 시경(詩經) 당체(棠棣)에서 형제의 우의를 노래했다.
낙비[洛妃] 상고 시대 복희씨(伏羲氏)의 딸인 복비(宓妃)가 낙수(洛水)에서 익사하여 수신(水神)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어 낙비(洛妃)라고 한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조식(曹植)이 그 전설에 의거해 지은 낙신부(洛神賦)가 유명하다.
낙비[洛妃] 전설 속의 낙수(洛水)의 여신 복비(宓妃)를 말한다. 원래 복희씨(宓羲氏)의 딸이었다고 한다. 송나라 황정견(黃庭堅)이 수선화(水仙花)를 낙비에 비유하여, ‘왕충도가 수선화 50가지를 보내와서, 흔연히 기뻐하며 수선화를 위해 읊다[王充道送水仙花五十枝 欣然會心 爲之作詠]’ 시에 “파도 넘어오는 선녀는 버선에 먼지 일고, 물 위에서 아리땁게 부연 달빛 밟고 오네.[凌波仙子生塵襪 水上輕盈步微月]”라고 하였다.
낙빈[雒嬪] 낙수(洛水)의 여신, 하백의 아내이다. 수신으로 이름은 복비(宓妃)이다. 전설에 의하면 그녀는 복희의 딸인데 낙수를 건너다가 물에 빠져 죽어 낙수의 여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빼어나게 아름다워서 시인들은 그녀에게 최고의 찬사와 칭송의 글을 적었다.
낙빈왕[駱賓王] 자(字)는 관광(觀光)이고, 무주(婺州) 의오(義烏: 현재의 절강성浙江省 의오현義烏縣)인이다. 고종(高宗) 말년(末年)에 무공(武功)을 세워 시어사(侍御使) 등을 역임했다. 무후(武后)가 정치를 농단(壟斷)하자 서경업(徐敬業)이 거병하였는데, 낙빈왕은 그의 속관(屬官)으로서 유명한 토무후격(討武后檄)을 썼다. 서경업(徐敬業)이 실패한 뒤 도망갔으나 이후의 종적(蹤迹)은 알려져 있지 않다. 락림해집(駱臨海集)이 전한다.
낙빈왕[駱賓王] 당(唐)나라 때의 시인으로, 자는 관광(觀光)이다. 문장을 잘하여 왕발(王勃)・양형(楊炯)・노조린(盧照鄰) 등과 함께 시문이 뛰어난 ‘초당사걸(初唐四傑)’로 일컬어지고, ‘왕양노락(王楊盧駱)’으로 병칭되기도 한다. 육조(六朝)의 시풍을 계승하면서도 격조가 청려(淸麗)하였고, 특히 노조린과 함께 칠언 가행(七言歌行)에 뛰어났다. 대표작으로는 제경편(帝京篇)이 당시선(唐詩選)에 수록되어 있고, 시문집으로는 낙빈왕 문집(駱賓王文集)・낙임해집(駱臨海集)・낙승집(駱丞集) 등이 있다. 서경업(徐敬業)이 군대를 동원하여 무후(武后)를 치자 낙빈왕은 그를 위하여 무후를 토벌하는 격문(檄文)를 지었는데 그 후 서경업이 패하니, 혹은 피살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혹은 망명하였다고 하기도 하고, 혹은 영은사(靈隱寺)의 중이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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