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사[洛社] 나이 많은 명사(名士)들의 모임인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를 이른다. 당(唐)나라의 백거이(白居易)가 일찍이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를 결성하였는데, 송(宋)나라 문언박(文彦博)이 서도유수(西都留守)로 있을 때 이것을 본떠 부필(富弼)의 집에서 연로하고 어진 사대부들을 모아 놓고 술자리를 베풀어 서로 즐겼던 모임을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 또는 낙사기영회(洛社耆英會)라 하였던 데서 온 명칭으로, 조선 시대에 나이가 많은 임금이나 벼슬에서 물러난 70세 이상 정2품 이상의 문관들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곳인 기로사(耆老社)의 모임을 가리킨다.
낙사[洛社] 낙양(洛陽)에서 결성한 원로들의 모임으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당나라 때에 74세인 백거이(白居易)의 주도로 89세인 호고(胡杲), 86세인 길민(吉旼), 84세인 정거(鄭據), 82세인 유정(劉貞), 82세인 노진(盧眞), 74세인 장혼(張渾) 등 7명과 70세가 아직 안 된 적겸모(狄兼謨)와 노정(盧貞)을 합쳐 모임을 결성하였는데, 후대에 이를 낙중구로회(洛中九老會)라고 하였다. 둘째는 송나라 때에 77세인 낙양유수(洛陽留守) 문언박(文彦博)이 79세인 부필(富弼), 77세인 석여언(席汝言), 76세인 왕상공(王尙恭), 75세인 조병(趙丙), 75세인 유궤(劉几), 75세인 풍행기(馮行己), 73세인 초건중(楚建中), 72세인 왕신언(王愼言), 71세인 왕공신(王拱辰), 70세인 장문(張問), 70세인 장도(張燾), 64세인 사마광(司馬光) 등과 함께 결성한 모임으로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라고 한다.
낙사[洛社] 송(宋)나라 문언박(文彦博)이 서도 유수(西都留守)로 있을 때 부필(富弼)의 집에서 사마광(司馬光) 등 연로하고 어진 사대부들을 모아 놓고 술자리를 베풀어 서로 즐겼던 모임을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 또는 낙사기영회(洛社耆英會)라고 하였다. 송나라의 구양수(歐陽脩)와 매요신(梅堯臣) 등이 노년에 낙양에서 조직한 시사(詩社)인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를 말하기도 한다. 후대에는 기로소(耆老所)를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쓰였다. 송사(宋史) 권313 문언박열전(文彦博列傳)에 “문언박이 부필, 사마광 등 13인과 더불어서 백거이(白居易)의 구로회(九老會) 고사(故事)를 따라 술을 마시면서 시를 읊으며 즐겼는데, 나이의 순서에 따라 자리를 정하고 관직의 높고 낮음은 따지지 않았다. 이를 낙양기영회라 했는데, 호사자들이 모두 부러워하였다.”라고 하였다.
낙사[落仕] 벼슬자리에서 떨어짐. 낙직(落職).
낙사[洛師] 하남성(河南省)의 낙양(洛陽)을 이르던 말이다. 師(사)는 경사(京師, 서울)의 뜻이다.
낙사[洛師] 낙사(洛師)는 낙읍(洛邑)이다. 주나라 성왕(成王) 때에 주공이 도읍을 낙읍으로 옮기고 낙사도(洛師圖)를 그려 바치며, 전말을 보고하였다. 이것이 서경(書經) 낙고(洛誥)이다. 여기에 “내가 을묘일 아침에 낙사에 이르러, 하삭과 여수를 점쳐 보고 간수의 동쪽과 전수의 서쪽을 점쳐 보니, 거북껍질이 두 번 다 낙읍을 먹었으며, 내가 또 전수의 동쪽을 점쳐 보니, 또한 낙읍(洛邑)을 먹었으므로, 이에 사람을 보내어 지도(地圖)와 점괘를 올립니다.[予惟乙卯 朝至于洛師 我卜河朔黎水 我乃卜澗水東 瀍水西 惟洛食 我又卜瀍水東 亦惟洛食 伻來以圖及獻卜]”라고 한 주공(周公)의 말이 보이는바, 낙(洛)은 낙양(洛陽)이고 사(師)는 경사(京師)로 모두 도성을 가리킨다. 거북껍질이 먹었다는 것은, 거북점을 칠 때 껍질에 미리 먹줄을 쳐 놓고 껍질을 태우는데, 이때 먹줄을 따라 균열이 생기는 것을 이르는바, 이는 길한 점괘라 한다.
낙사구로회[洛社九老會] 낙양(洛陽)에서 결성한 원로들의 모임으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당나라 때에 74세인 백거이(白居易)의 주도로 89세인 호고(胡杲), 86세인 길민(吉旼), 84세인 정거(鄭據), 82세인 유정(劉貞), 82세인 노진(盧眞), 74세인 장혼(張渾) 등 7명과 70세가 아직 안 된 적겸모(狄兼謨)와 노정(盧貞)을 합쳐 모임을 결성하였는데, 후대에 이를 ‘낙중구로회(洛中九老會)’라 하였다. 둘째는 송나라 때에 77세인 낙양 유수(洛陽留守) 문언박(文彦博)이 79세인 부필(富弼), 77세인 석여언(席汝言), 76세인 왕상공(王尙恭), 75세인 조병(趙丙), 75세인 유궤(劉几), 75세인 풍행기(馮行己), 73세인 초건중(楚建中), 72세인 왕신언(王愼言), 71세인 왕공신(王拱辰), 70세인 장문(張問), 70세인 장도(張燾), 64세인 사마광(司馬光) 등과 함께 결성한 모임으로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라고 한다.
낙사기영[洛社耆英]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를 가리킨다. 송(宋)나라 문언박(文彦博)이 서경 유수(西京留守)로 있을 때 당(唐)나라 백거이(白居易)의 구로회(九老會) 고사를 본떠 부필(富弼), 사마광(司馬光) 등 13인의 학덕(學德) 높은 노인들과 노인을 모아 낙사 기영회(洛社耆英會)를 결성하였는데, 그 뒤 조정 원로들의 모임을 흔히 기영회라고 하였다. <宋史 卷313 文彦博列傳>
낙사기영회[洛社耆英會]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라고도 한다. 송(宋)나라 문언박(文彦博)이 서도유수(西都留守)로 있을 때, 부필(富弼)의 집에서 연로하고 어진 사대부들을 모아 놓고 술자리를 베풀어 서로 즐겼던 모임을 가리킨다. 이때에 참여한 인사는 77세인 문언박(文彦博), 79세인 부필(富弼), 77세인 석여언(席汝言), 76세인 왕상공(王尙恭), 75세인 조병(趙丙), 75세인 유궤(劉几), 75세인 풍행기(馮行己), 73세인 초건중(楚建中), 72세인 왕신언(王愼言), 71세인 왕공신(王拱辰), 70세인 장문(張問), 70세인 장도(張燾), 64세인 사마광(司馬光) 등이었다. 송사(宋史) 문언박전(文彦博傳)에 “문언박이 부필, 사마광 등 13인과 더불어서 백거이(白居易)의 구로회(九老會)고사(故事)를 따라 술을 마시면서 시를 읊으며 즐겼는데, 나이의 순서에 따라 자리를 정하고 관직의 높고 낮음은 따지지 않았다. 이를 낙양기영회라 하였는데, 호사자들이 모두들 부러워하였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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