少無適俗韻[소무적속운] 어려서부터 세속과 맞지 않고
性本愛丘山[성본애구산] 타고나길 자연을 좋아했으나
誤落塵網中[오락진망중] 잘못 속세의 그물에 떨어져
一去三十年[일거삼십년] 훌쩍 삼십년이 지나버렸네
羈鳥戀舊林[기조연구림] 새장의 새 옛 숲 그리워하고
池魚思故淵[지어사고연] 연못의 물고기 옛 못 생각하듯
開荒南野際[개황남야제] 남쪽들 가장자리 황무지 일구며
守拙歸園田[수졸귀원전] 순박하게 살러 전원에 돌아왔네
方宅十餘畝[방댁십여무] 집 둘레는 네모져 십 여 무
草屋八九間[초옥팔구간] 초가집은 여덟아홉 간
楡柳蔭後檐[유류음후첨] 느릅나무 버드나무 뒤 처마를 덮고
桃李羅堂前[도리나당전] 복숭아 오얏나무 집 앞에 늘어섰네
曖曖遠人村[애애원인촌] 어슴푸레 멀리 사람 사는 마을
依依墟里煙[의의허리연] 하늘하늘 오르는 촌락의 연기
狗吠深巷中[구폐심항중] 개는 깊숙한 골목 안에서 짖고
鷄鳴桑樹顚[계명상수전] 뽕나무 꼭대기에서 닭이 우누나
戶庭無塵雜[호정무진잡] 집 뜰에는 번잡스러움이 없고
虛室有餘閒[허실유여한] 텅 빈 방안에는 한가로움이 있어
久在樊籠裏[구재번롱리] 오래도록 새장 속에 갇혀 있다가
復得返自然[부득반자연] 이제야 다시 자연으로 돌아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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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園田居五首[其一]귀원전거5수1 / 전원에 돌아와 살다 / 陶淵明도연명>
※ 제목이 歸田園居(귀전원거)라고 된 본(本)도 있다. 귀원전거(歸園田居)는 전체가 5수인지 6수인지에 대하여도 논란이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제6수로 치는 종묘재동고(種苗在東皐 : 歸田園) 시(詩)인데, 도연명(陶淵明)의 작품이 아니고 강엄(江淹)의 작품이라는 설이 있다. 이에 대하여 청대(淸代) 장옥곡(張玉穀)은 고시상석(古詩賞析)에서 “한자창(韓子蒼)이 말하기를 ‘전원(田園) 6수의 마지막 편(篇)은 행역(行役)을 서술한 것으로 앞의 다섯 수와는 다르다. 그런데 속본(俗本)에는 마침내 강엄(江淹)의 종묘재동고(種苗在東皐)를 마지막 편으로 삼았으며, 소동파(蘇東坡) 역시 그대로 따랐다. 진술(陳述)의 고본(古本)에는 다만 다섯 수가 실려 있는데, 나는 모두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마땅히 장상국(張相國)의 본(本)과 같이 잡영(雜詠) 6수라고 제목을 붙이는 것이 옳다고 본다.[田園六首, 末篇乃序行役, 與前五首不類. 今俗本乃取江淹種苗在東皐為末篇, 東坡亦因其誤和之. 陳述古本止有五首, 予以為皆非也. 當如張相國本題為雜詠六首.]’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 보건대 진술(陳述)의 고본(古本)을 따라 5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 도연명[陶淵明] 도잠(陶潛). 동진(東晉) 말기부터 남조(南朝) 송(宋:유송劉宋) 초기 사람이다. 시인이자 문학가로 청신하고 자연스러운 시문으로 시명을 얻었다. 강주(江州) 심양(尋陽) 시상(柴桑)에서 태어났다. 자는 원량(元亮)이다. 송(宋)나라에 와서 이름을 잠(潛)으로 바꾸었다. 일설에는 연명(淵明)이 그의 자(字)라고도 한다. 증조부 도간(陶侃)은 동진(東晉)의 개국공신으로 관직이 대사마에 이르렀으며, 조부 도무(陶茂)와 부친 도일(陶逸)도 태수를 지냈다. 29세 때에 벼슬길에 올라 주(州)의 좨주(祭酒)가 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사임하였다. 그 후 생활을 위하여 진군참군(鎭軍參軍)・건위참군(建衛參軍)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항상 전원생활을 동경한 그는 팽택현령(彭澤縣令)이 되었으나 80여 일 만에 벼슬을 버리고, 41세에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전원으로 돌아와 문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였다. 고향에 은거한 뒤에 다시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63세에 세상을 떴다. 그의 사후에 평소 그와 가깝게 지냈던 이들이 그에게 정절선생(靖節先生}이란 시호를 주어 불렀다. 양(梁)나라 종영(鍾嶸)의 시품(詩品)에 “고금의 은일시인 가운데 첫머리[古今隱逸詩人之宗]”라 평가했을 만큼 그의 시풍이 중국문학사에 남긴 영향이 매우 크다. 주요 작품으로 음주(飮酒)・귀원전거(歸園田居)・도화원기(桃花源記)・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귀거래사(歸去來辭) 등이 있다. 도연명이 직접 지은 만사는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에 의만가사(擬挽歌辭)라는 제목으로 3수가 실려 있다.
- 구산[丘山] 산과 언덕. 자연. 은거지. 숨어사는 곳. 언덕과 산을 아울러 이르는 말. 물건이 많이 쌓인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진망[塵網] 속세. 인간세상. 때가 낀 그물이라는 뜻으로, 속세를 이르는 말.
- 기조[羈鳥] 새장 속에 얽매어 갇혀있는 새를 말한다,
- 수졸[守拙] 어리석음을 지킴. 자기 분수에 만족함. 어리석음을 지키고 본성(本性)을 고치지 않음. 사대부들이 관직에 나가지 않고 스스로 청빈함을 지키며 사는 것. 자신의 소박한 본성과 분수를 지켜 재주를 부리거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음.
- 방택[方宅] 네모진 택지(宅地). 방택십여무(方宅十餘畝)의 方(방)은 方百里(방백리)의 方과 같으니, 집 주위를 빙둘러 가로와 세로가 10여 무(畝)임을 말한 것이다.
- 무[畝] 땅 너비의 단위. 원래는 6척(尺) 사방이 1보(步), 백 보가 1무였는데, 진(秦)나라 이후에는 2백 40보를 1무로 하였다. 이랑, 전답(田畓)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묘라고도 한다.
- 애애[曖曖] 어두워서 분명하지 않은 모양. 어둠침침한 모양, 흐릿한 모양. 뉘엿뉘엿한 모양.
- 의의[依依] 확실하지 아니한 모양. 흐릿한 모양. 희미하다. 어렴풋하다.
- 의의[依依] 유약(柔弱)한 모양. 나뭇가지가 휘늘어진 모양. 바람에 가볍고 부드럽게 한들거리는 모양. 연약한 나뭇가지가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양. 시경(詩經) 소아(小雅) 채미(採薇)에 “지난 날 내가 떠날 때는, 버드나무 봄바람에 하늘거렸는데, 지금 내가 돌아갈 생각 하니, 진눈깨비 날리는 겨울 되었네.[昔我往矣, 楊柳依依, 今我來思, 雨雪霏霏.]”라고 하였다.
- 허리[墟里] 촌락(村落)을 의미한다.
- 호정[戶庭] 집안에 있는 뜰이나 마당.
- 진잡[塵雜] 티끌과 잡된 것. 지저분한 것들. 더럽고 잡스러운 것. 더럽고 귀찮은 것들. 잡스럽고 번잡한 것. 지저분하고 잡된 속세의 일.
- 허실[虛室]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 방.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의 이른바 심재(心齋)를 논하는 대목에 “저 빈 곳을 바라보아라. 텅 빈 방에서 광채가 뿜어 나오지 않던가. 온갖 길하고 상서로운 것은 조용히 멈추어 있는 곳에 모여드는 법이다.[瞻彼闋者 虛室生白 吉祥止止]”라는 말이 나온다. 즉 마음이 청허(淸虛)하여 욕심이 없으면 도심(道心)이 절로 생겨나는 것을 의미한다. 작위(作爲)를 하지 않으면 좋은 일이 일어나는 법이다. 또는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무념무상(無念無想)이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음에 비유하는 말이다. 허실(虛室)은 아무것도 없는 빈 방, 곧 물욕이 없는 마음의 비유한 것이다. 허실생백(虛室生白).
- 번롱[樊籠] 새장. 짐승이 갇혀 있는 목책(木柵)과 새가 갇혀 있는 둥우리. 번뇌에 묶여 자유롭지 못함. 속박을 당하여 자유롭지 못한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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