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초[落草] 몰락하여 초야에 떨어져서 도적이 됨을 이르는 말이다.
낙촉[洛蜀] 송(宋)나라 철종(哲宗) 때 삭방(朔方)의 유지(劉摯)가 나선 삭당(朔黨) 등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 시행을 반대하던 수구파 세 당파를 원우삼당(元祐三黨)이라 하였는데, 그 중의 두 당파 낙양의 정이(程頤)를 중심으로 한 낙당(洛黨)과 소식(蘇軾)을 앞세운 촉당(蜀黨)을 가리킨다. 엽양(葉襄)의 시 감구(感舊)에 “낙당과 촉당이 다투는 날은, 군왕이 나랏일에 열심이었네.[洛蜀紛爭日 君王宵旰時]”라고 하였다.
낙촉분당[洛蜀分黨] 정자(程子)와 소식(蘇軾)이 당파가 나뉘어 치열한 논쟁을 벌인 것을 가리킨다. 송 철종(宋哲宗) 때에 정이(程頤)의 낙당(洛黨)과 소식의 촉당(蜀黨)과 유지(劉摯)의 삭당(朔黨) 등 이른바 원우(元祐) 3당이 정립(鼎立)하여 정쟁(政爭)을 벌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정이와 소식은 학문에 기초한 치열한 논쟁을 벌여 낙촉지쟁(洛蜀之爭)이라는 호를 얻기까지 하였다. <小學紺珠 名臣類下>
낙촉예[洛蜀裔] 정직한 학자들을 이른다. 송 철종(宋哲宗) 때 낙양(洛陽)의 정이(程頤)을 선두로 한 낙당(洛黨), 촉(蜀)의 소식(蘇軾)을 선두로 한 촉당(蜀黨)이 있었다. 거기에 삭방(朔方)의 유지(劉摯)를 선두로 한 삭당(朔黨)을 합쳐 원우삼당(元祐三黨)이라고 불렀다. <小學紺珠 名臣類 下>
낙촉지쟁[洛蜀之爭] 송 철종(宋哲宗) 때에 정이의 낙당(洛黨)과 소식의 촉당(蜀黨)과 유지(劉摯)의 삭당(朔黨) 등 이른바 원우(元祐) 3당이 정립(鼎立)하여 정쟁(政爭)을 벌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정이와 소식은 학문에 기초한 치열한 논쟁을 벌여 낙촉지쟁(洛蜀之爭)이라는 호를 얻기까지 하였다. 이에 정이의 계통인 주자가 소식이 주장한 것이기만 하면 거의 모두 사정을 두지 않고 공격했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小學紺珠 名臣類下> <宋元學案 卷99>
낙축[落軸] 과거 시험에 떨어진 사람의 시권을 열 장씩 묶은 축을 이른다.
낙출서야 홍범귀황극지의[洛出書也 洪範貴皇極之義] 낙수(洛水)에서 글이 나오자 성인(聖人)이 홍범(洪範)에 황극(皇極)의 뜻을 귀하게 여김. 우왕(禹王)이 치수(治水)에 성공했을 때 낙수(洛水)에서 신령한 거북이 나왔는데, 그 등에 1에서 9까지의 점이 그려져 있었다. 이 무늬를 낙서(洛書)라고 하는데, 북쪽에 1, 남쪽에 9, 동쪽에 3, 서쪽에 7, 동북쪽에 8, 서북쪽에 6, 동남쪽에 4, 서남쪽에 2가 배열되어 있었다. 우왕이 이를 보고 차례로 진열해서 구류(九類)를 이루었으니, 서경(書經)의 홍범구주(洪範九疇)가 이것이다. 홍범(洪範)은 나라를 다스리는 큰 법이고, 구주는 그 아홉 가지 종류인데 오행(五行), 오사(五事), 팔정(八政), 오기(五紀), 황극(皇極), 삼덕(三德), 계의(稽疑), 서징(庶徵)의 여덟 가지에 오복(五福)과 육극(六極)을 합한 것이다.
낙치부생[落齒復生] 늙은이의 빠진 이가 다시 난다는 말이다.
낙치사[落致仕] 치사(致仕)에 낙점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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