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학[洛學] 북송(北宋) 낙양(洛陽)의 정호(程颢)와 정이(程頤) 형제를 수장으로 삼는 학파를 이른다.
낙학[犖确] 산에 바위가 많음. 산이 험한 모양. 산의 바위들이 험준하고 울퉁불퉁하여 고르지 못한 모양이다.
낙학건학[洛學建學] 낙(洛)과 건(建)은 낙양(洛陽)과 건양(建陽)을 가리키는데, 낙양은 송(宋)나라 때 정호(程顥), 정이(程頤)가 살던 곳이고, 건양은 주희(朱熹)가 살던 곳으로 전의하여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학풍을 이르는 말이다.
낙행우위[樂行憂違]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좋은 세상이 되어 즐거우면 도를 행하고, 나쁜 세상이 되어 근심스러우면 떠나간다.[樂則行之 憂則違之]”라고 보이는바, 이는 세상이 좋아지면 나와서 벼슬하여 도를 행하고 세상이 나빠져 근심스러운 때가 되면 물러가 은둔함을 뜻한다.
낙형[烙刑] 단근질하는 것이니, 곧 쇠를 불에 달구어 몸을 지지는 형벌이다.
낙홍[落紅] 낙화. 떨어진 꽃잎.
낙화[樂禍] 즐거움과 화. 남의 화를 즐거워함.
낙화난상지[落花難上枝] 한번 진 꽃은 다시 가지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뜻으로 한 번 깨진 인연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이다. 한번 헤어진 부부(夫婦)는 다시 합치기 어렵다. 한번 저지른 일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이다.
낙화낭자[洛花狼藉] 떨어진 꽃잎이 흩어져 어지럽다는 뜻으로, 사물(事物)이 뒤섞여 흩어져 있는 모양(模樣)을 이른다.
낙화암[落花巖] 부여현(扶餘縣) 북쪽 1리 되는 곳에 있다. 조룡대(釣龍臺)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의자왕(義慈王)이 당나라 군대에게 패하니, 궁녀들이 도망쳐 이 바위에 올라가서 스스로 강물로 떨어졌다. 그래서 이름을 낙화암이라 한 것이다.
낙화암[落花巖] 충청남도 부여군 백마강 가의 부소산(扶蘇山) 서쪽에 있는 낭떠러지 바위이다. 백제가 망할 때에 의자왕(義慈王)의 궁녀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치마를 뛰집어 쓰고 백마강으로 뛰어내리는 모습이 꽃잎이 떨어지는 것과 같아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낙화암[落花巖] 영월(寧越)에 있는 창렬암(彰烈巖)으로, 1457년(세조3) 상왕(上王)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영월(寧越)에 유배된 단종이 승하하자, 단종을 모시던 시녀들이 금장강(錦障江)에 투신하여 죽으니, 마을 사람들이 이를 슬프게 여겨 투신한 곳을 낙화암(落花巖)이라 부르고 단을 설치하여 이들의 넋을 위로하였다. 그 후 1742년(영조18)에 왕명으로 이곳에 사당을 건립하고 민충사(愍忠祠)라는 사액을 내려 이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하였는데, 1746년에 부사 조하망(曹夏望)이 낙화암을 창렬암으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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