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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주[蘭舟]~난주지계[亂朱之戒]~난줄옥설[蘭茁玉雪]


난주[蘭舟]  난주는 목란주(木蘭舟)의 준말로, 목란(木蘭)으로 만든 배이다. 보통 작은 거룻배를 가리킬 때 쓰는 시어(詩語)이다. 춘추 시대 노반(魯般)이 목란(木蘭) 나무를 깎아 배를 만든 데서 유래하였다. 작고 아름다운 배의 미칭(美稱)으로 쓰인다. 송나라 문인 소식(蘇軾)이 적벽부(赤壁賦)에서 “명월시를 외우고 요조장을 노래하네.[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라고 하였다.

난주[灤州]  난주는 옛날 고죽국(孤竹國)의 땅으로 연경에 사신 가는 사람들이 경유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위패를 모신 청성사(淸聖祠)라는 사당이 있다.

난주[亂朱]  공자가 사이비(似而非)를 미워하면서 한 말에 보이는데, 간색(間色)이 정색(正色)을 어지럽히게 두어선 안 된다는 의미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이비를 미워한다.……자주색이 붉은색을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한다.[孔子曰 惡似而非者……惡紫恐其亂朱也]”라고 하였다. <孟子 盡心章句下>

난주지계[亂朱之戒]  난주(亂朱)의 가르침. 공자가 사이비(似而非)를 미워하면서 한 말에 보이는데, 간색(間色)이 정색(正色)을 어지럽히게 두어선 안 된다는 의미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이비를 미워한다.……자주색이 붉은색을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한다.[孔子曰 惡似而非者……惡紫恐其亂朱也]”라고 하였다. <孟子 盡心章句下>

난죽첩[蘭竹帖]  중국 명나라의 문신 주지번(朱之蕃)이 1606년(선조39)에 황손(皇孫)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 조선에 사신으로 왔을 때에 허균(許筠)이 원접사(遠接使)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접대를 맡았는데, 그때에 주지번이 직접 난초와 대나무를 그려 허균에게 선물하였다. 당시에 묵죽(墨竹)과 매화, 난초를 잘 그리기로 유명했던 종실(宗室) 석양정(石陽正) 이정(李霆)이 주지번의 그림에 화답하여 비에 맞은 대나무와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두 떨기를 그려서 허균에게 주었다고 한다. 허균은 이 그림들을 가지고 당시의 명사(名士)들을 찾아가 시를 받은 뒤에 총 17장의 시화첩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이 난죽첩(蘭竹帖)이다. 주지번은 금릉(金陵) 사람으로, 자는 원개(元介)・원승(元升), 호는 난우(蘭嵎)이다. 만력(萬曆) 23년(1595)에 진사시(進士試)에 1등으로 급제하였고 벼슬이 이부 시랑(吏部侍郞)에 이르렀으며 서화(書畫)에 조예가 깊었다. <星湖全集 卷56 蘭竹帖跋>

난줄기아[蘭茁其芽]  남의 훌륭한 자제를 비유한 말이다. 한유(韓愈)의 전중소감마군묘명(殿中少監馬君墓銘)에 “어린 아들은 아름답고 예쁘며 조용하고 빼어나서 옥가락지나 옥귀고리와 같고 난초의 싹이 돋아난 것과 같으니, 그 집안의 아들에 걸맞았다.[幼子娟好靜秀 瑤環瑜珥 蘭茁其芽 稱其家兒也]”라고 하였다. <古文眞寶後集 卷4>

난줄옥설[蘭茁玉雪]  난줄(蘭茁)은 향기로운 풀이고, 옥설(玉雪)은 해맑은 피부로, 자질이 뛰어난 어린아이를 형용하는 말이다. 한유(韓愈)의 전중소감마군묘지명(殿中少監馬君墓誌銘)에 “유모가 어린 아들을 안고 곁에 서 있었는데, 눈썹과 눈이 그림 같고 머리카락이 아주 검었으며, 피부가 옥이나 눈을 생각할 만하였으니, 그가 바로 전중소감(殿中少監)이었다.”라고 하였다.

난중지난[難中之難]  어려운 가운데 더욱 어려움이 있다는 말이니 몹시 어렵다는 뜻이다.

난중지난사[難中之難事]  어려운 중(中)에 어려운 일이라는 뜻으로, 몹시 어렵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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