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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회[煖會]~난회[欄灰]~난회자[欒懷子~난회지[鸞廻紙]


난회[煖會]  난로회(煖爐會)를 말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서울 풍속에 숯불을 화로에 피워 번철(燔鐵)을 올려놓고 쇠고기에 갖은 양념을 하여 구우면서 둘러앉아 먹는 것을 ‘난로회’라 한다고 하였다. 번철은 전을 부치거나 고기를 볶는 데 쓰는 무쇠 그릇으로 전철(煎鐵)이라고도 한다. 삿갓을 엎어놓은 듯한 모양의 번철 주위에 둘러앉는다고 하여, 난로회를 철립위(鐵笠圍)라고 한 듯하다.

난회[蘭會]  난주(蘭州)와 회주(會州)를 이른다. 모두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일대인데, 송(宋) 신종(神宗) 때에 서하(西夏)로부터 수복한 다음 난주(蘭州)와 회주(會州)를 설치하고 희하로(熙河路)에 편입시켰다.

난회[欄灰]  난목(欄木)을 태워 만든 재이니, 옷감을 표백하는 물질이다. <周禮 冬官考工記 㡃氏>

난회자[欒懷子]  환자(桓子)의 아들. 난영(欒盈)을 이른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사람으로, 평공(平公) 때 하경(下卿)이 되었다. 범선자(范宣子)의 무고로 쫓겨나 초(楚)나라로 달아났다가 제(齊)나라로 가 있다가 진(晉)나라에 잠입하여 패전(敗戰)한 뒤 곡옥(曲沃)으로 달아났으나 멸족(滅族)되었다. <春秋左氏傳 襄公 21년><史記 齊世家>

난회자득죄어진 기당개출분[欒懷子得罪於晉 其黨皆出奔]  난회자(欒懷子)는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로 이름이 영(盈)이고 회자(懷子)는 그의 시호이며, 범선자(范宣子)는 이름이 개(匄)이고 선자(宣子)는 그의 시호이다. 난영(欒盈)의 어머니 범기(范祁)는 당시 진(晉)나라 국정을 맡고 있던 범선자(范宣子: 범개范匄)의 딸이었는데, 남편인 난환자(欒桓子: 난염欒黶)가 죽자 가로(家老)인 주빈(州賓)과 사통하여 가산을 탕진하였다. 난영(欒盈)이 이를 걱정하자, 범기(范祁)는 아들(欒盈난영)이 자신의 정부(情夫)를 죽일까 염려하여, 친정아버지인 범개(范匄)에게 아들이 반란을 획책하고 있다고 모함하였다. 범개(范匄)는 난영(欒盈)이 평소 은혜를 베풀어 주변에 인사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였는데, 이를 빌미삼아 난영(欒盈)을 저읍(著邑)으로 보내 성(城)을 쌓게 하다가 마침내 축출하니, 난영(欒盈)은 무리를 거느리고 초(楚)나라로 도망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 21년>

난회지[鸞廻紙]  난회(鸞廻)의 종이는 교지의 서체가 아름답고 정교한 것을 형용한 말이다. 두보(杜甫)의 시에 “난회의 종이에 쓴 조서가 모친에게 내리자, 맑은 조정에 제비도 찾아와 축하하네.[紫誥鸞廻紙, 淸朝燕賀人.]”라는 구절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21 奉賀陽城郡王太夫人恩命加鄧國太夫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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