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鬢漁翁住浦間[설빈어옹주포간] 흰 머리 늙은 어부 갯가에 살며
自言居水勝居山[자언거수승거산] 물에 사는 것이 산 보다 낫다네
靑菰葉上凉風起[청고엽상양풍기] 푸른 부추 잎 위로 서늘한 바람
紅蓼花邊白鷺閑[홍료화변백로한] 붉은 여뀌꽃 옆에 한가로운 백로
盡日泛舟烟裏去[진일범주연리거] 종일 배 띄워 안개 속에 갔다가
有時搖棹月中還[유시요도월중환] 저물면 노 저어 달빛에 돌아오네
濯纓歌罷汀洲靜[탁영가파정주정] 탁영가 그치고 모래톱 고요한데
竹逕柴門猶未關[죽경시문유미관] 대숲 길 사립문 아직 닫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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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漁父어부 / 어부 / 白居易백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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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조선(朝鮮) 시대 이현보(李賢輔)의 어부가(漁父歌)의 바탕이 된 당(唐)나라 백거이(白居易)의 시라고 하는데 원문(原文)과 작자(作者) 등을 확인할 길이 없다. 일찍이 고려(高麗) 때부터 12장으로 된 장가와 10장으로 된 단가로 된 어부사(漁父詞) 전해져 왔는데,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가 이를 개작하여 9장의 장가와 5장의 단가로 만들었다. 이 시는 9장의 장가 중 제1, 2, 3, 6장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4장에는 대복고(戴復古)의 시 조대(釣臺)의 구절이 인용되어 있기도 하다. 어부가(漁父歌)는 농암집(聾巖集) 권3에 실려 있다.
- 백거이[白居易] 당(唐)나라 때 시인으로 자는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 또는 취음선생(醉吟先生)이다. 조적(祖籍)은 산서(山西) 태원(太原)이고, 이백(李白)이 죽은 지 10년, 두보(杜甫)가 죽은 지 2년 후에 하남(河南) 신정(新鄭)에서 태어났다. 정원(貞元) 16년(800)에 진사가 되어, 벼슬은 소주(蘇州)・항주(杭州)의 자사를 거쳐 만년에 태자소부(太子少傅)에 지냈고, 형부상서(刑部尙書)로 치사(致仕)하였다. 향산(香山)에서 지내다가 세상을 뜬 뒤 낙양(洛陽) 남쪽 향산의 비파봉(琵琶峰)에 묻혔다. 시호는 문(文)이다. 세상 사람들이 백부(白傅) 또는 백문공(白文公)으로 불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5세 때부터 시 짓는 법을 배웠으며 15세가 지나자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는 시재를 보였다 한다. 이백(李白), 두보(杜甫)와 더불어 당대3대시인(唐代三大詩人)으로, 같은 시대의 한유(韓愈)와 더불어 이두한백(李杜韓白)으로 병칭된다. 원진(元稹)과는 함께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을 이끌어 원백(元白)으로, 유우석(劉禹錫)과는 유백(劉白)으로 병칭되며 당시 으뜸으로 쳤다. 백거이는 시의 제재가 광범위하고 형식이 다양하며 언어가 평이하고 통속적이어서 시마(詩魔) 또는 시왕(詩王) 등의 칭호를 얻었다. 그는 시론을 통해 자신의 시작의 첫째 목적은 겸제(兼濟)의 뜻을 살린 풍유(諷諭)에 있다고 현실주의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고, 스스로 자신의 시집을 편집하면서 시를 풍유시(諷諭詩), 한적시(閑寂詩), 감상시(感傷詩), 잡률(雜律詩)의 네 종류로 분류하였다. 만년에는 세상일에 대하여 고민하고 방황한 끝에 한적을 좋아하는 태도로 발전한다. 저서에 백씨장경집(白氏長慶集)・백씨육첩사류(白氏六帖事類) 등이 전한다. 장한가(長恨歌), 매탄옹(賣炭翁), 비파행(琵琶行) 등을 대표적인 시로 꼽는다.
- 탁영[濯纓] 갓끈을 빤다는 뜻으로,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 “유자(孺子)가 노래하기를 ‘창랑(滄浪)의 물이 맑거든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나의 발을 씻는다.[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공자가 ‘너희는 들으라.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게 되니, 이는 물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탁영[濯纓] 갓끈을 씻는다는 것은, 전국 시대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나 초췌한 안색으로 강변을 거닐자 어부가 그 이유를 물었는데, 굴원이 더러운 세상에 대해서 푸념을 늘어놓으니, 어부가 빙그레 웃으면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면 된다.[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고 은거 생활을 권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떠나갔다는 어부사(漁夫辭)의 이야기와 한유(韓愈)의 현재유회(縣齋有懷) 시에 “사업은 고요(皐陶)와 후직(后稷)을 엿보고, 문장은 조식(曹植)과 사영운(謝靈運)을 멸시하였으며, 갓끈을 씻고 강호에서 일어나, 난사와 같은 향기로운 패옥을 허리에 찼다.[事業窺皐稷 文章蔑曹謝 濯纓起江湖 綴珮雜蘭麝]”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韓昌黎集 卷2>
- 탁영[濯纓] 창랑(滄浪)에 갓끈을 씻는다는 뜻으로,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나 수심 띤 얼굴로 강가를 거닐고 있었다. 어부(漁父)가 그를 알아보고 그 이유를 물으니, 굴원이 대답하기를, ‘나와 세상이 맞지 않아서 그럽니다.’라고 하자, 어부(漁父)가 빙그레 웃고 뱃전을 두드리면서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나의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古文眞寶後集 卷1>
- 탁영가[濯纓歌] 초(楚) 나라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나 강담(江潭)에서 노닐 적에 어부(漁父)를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어부가 세상과 갈등을 빚지 말고 어울려 살도록 하라고 충고를 했는데도 굴원이 받아들이지 않자, 어부가 빙긋이 웃고는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면 될걸.[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이라고 했다는 내용이 초사(楚辭) 어부사(漁父辭)에 나온다.
- 정주[汀洲] 강·내·못·호수(湖水)·바다 등의 물이 얕고 흙·모래가 드러난 곳. 토사가 침적하여 만들어진 평평한 땅. 사주(砂洲). 모래톱. 모래섬. 이상은(李商隱)의 시 안정성루(安定城樓)에 “아득해라 높은 성의 백 척 누각이여, 푸른 버들가지 말고는 온통 모래섬뿐.[迢遞高城百尺樓 綠楊枝外盡汀洲]”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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