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남소[南巢]~남솔[濫率]~남송[南宋]~남송화의[南宋和議]


남소[南巢]  남소(南巢)는 지명으로,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소현(巢縣) 서남쪽에 있다. 하(夏)나라 걸왕(桀王)이 그의 비(妃)인 말희(妺喜)의 미색(美色)에 빠져 밤낮으로 질탕하게 술을 마시면서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고 폭정을 행하자, 당시 제후였던 탕(湯)이 군대를 이끌고 하나라의 도읍을 공격하여 명조(鳴條)에서 결전을 벌였는데, 이 전투에서 패한 걸왕이 남소로 달아나자 탕이 걸왕을 이곳에 유폐시켰다. 걸왕은 이곳에서 얼마 되지 않아 죽고, 탕이 상(商)나라를 개창하였다.

남소[南巢]  남소는 지명으로 여강(廬江)의 거소성(居巢城)을 가리킨다. 서경(書經) 중훼지고(仲虺之誥)의 “성탕이 걸왕을 남소에 유폐시키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에 ‘나는 후세에 나를 구실로 삼을까 두려워한다.’라고 하였다.[成湯放桀于南巢 惟有慙德 曰予恐來世 以台爲口實]”라는 구절에 보인다. <書經 商書 仲虺之誥>

남소[南巢]  남방의 봉황이 깃든 곳이라 한다.

남솔[濫率]  고을 수령(守令)이 부임할 때 제한된 수 이상으로 가족을 데리고 부임하는 일을 이른다.

남송[南宋]  중국의 통일왕조 송(宋)나라의 후기(後期)를 이른다. 이에 대하여 송나라의 전기(前期)를 북송(北宋)이라고 한다. 즉, 남송은 북송이 멸망 후, 고종(高宗) 건염(建炎) 원년부터 원(元)에게 망할 때까지 조대를 가리킨다. 여진(女眞)족이 세운 금(金)이 요(遼)를 쳐서 멸망시킨 여세를 몰아, 송나라 수도 개봉(開封)을 점령하고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을 포로로 잡아갔으므로 송나라 왕실의 계통이 중단되었다. 이를 ‘정강의 변[靖康之變靖康之變]’이라 한다. 난을 피해 남쪽으로 도망한 휘종의 아들이자 흠종의 동생인 고종(高宗)이 남중국의 임안(臨安: 지금의 항주抗州)에 도읍하여 남송(南宋)을 재건하였다. 금(金)과 화의하고 중국의 남부지역을 지배하였으나, 금(金)나라를 멸망시킨 몽골의 원(元)나라에 의해 임안(臨安)이 함락되고, 애산(厓山)전투에 패배하여 9세(世) 152년 만에 망(亡)하였다.

남송화의[南宋和議]  송(宋) 나라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이 금(金)에게 사로잡혀 북으로 가니, 송 나라는 도읍을 강남으로 옮겼다. 이로부터 남송(南宋)이라 하고 천도 이전을 북송(北宋)이라고 한다. 송 나라는 남하한 뒤에 금(金)과 끝까지 항전할 것을 주장하는 파와 금과 화의하자는 파가 대립하여 맹렬한 논쟁이 학자 간에도 벌어졌으나 마침내 주화론자인 진회(秦檜)가 권력을 잡아서 주전론자들을 눌러 버렸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