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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삼고[南陽三顧]~남양생어[南陽生魚]~남양주계[南陽朱季]


남양삼고[南陽三顧]  삼고초려(三顧草廬)와 같다. 남양(南陽)은 하남성(河南省) 남양현(南陽縣)에 있는 지명으로,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출사(出仕) 전에 농사지으며 살던 곳이다. 당시 서서(徐庶)가 유비(劉備)에게 제갈량을 두고, 은거하여 두각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하여 와룡(臥龍)이라고 일컬었는데, 유비(劉備)가 이곳의 초려(草廬)를 세 차례나 방문하여 자신을 도와줄 것을 청하자, 이에 나아가 승상이 되어 유비를 보필하여 촉한(蜀漢)의 부흥에 힘썼다. 제갈량은 있는 마음과 힘을 다하여 여섯 차례나 중원(中原)을 수복시키려 했으나 끝내 오장원(五丈原)에서 최후를 마치고 말았다. 시호는 무후(武侯)이다. <三國志 卷35 蜀書 諸葛亮傳>

남양생어[南陽生魚]  관리의 청렴을 말한다. 동한(東漢)의 양속(羊續)이 남양 태수(南陽太守)로 있을 때 아래 관리가 그에게 생어(生魚)를 보내자 담장 안에 매달아 두었는데, 나중에 또 그 사람이 물고기를 보내자 이전의 물고기를 내보여서 뇌물을 바치지 못하게 막은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後漢書 卷31 羊續列傳>

남양수담[南陽壽潭]  하남성(河南省) 남양부(南陽府)에 국담(菊潭)이란 못이 있는데, 그 물이 매우 달고 향기로워서 그곳 주민들이 이 물을 마시고 장수(長壽)한 이가 많다고 한다.

남양옹[南陽翁]  남양(南陽)의 늙은이란 바로 촉한(蜀漢) 때 남양에 살았던 제갈량(諸葛亮)을 말하는데, 그는 촉한의 유비(劉備)에게 역시 승상(丞相)으로 등용되었다. <三國志 卷三十五>

남양와룡[南陽臥龍]  제갈량을 가리킨다. 촉한(蜀漢)의 서서(徐庶)가 일찍이 유비(劉備)를 만나 자기 친구인 남양의 제갈량(諸葛亮)을 천거하면서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와룡(臥龍: 숨어있는 용)이니, 장군은 어찌 그를 만나 보려고 하지 않습니까?[諸葛孔明者, 臥龍也, 將軍豈願見之乎?]”라고 했던 데서, 바로 제갈량을 가리킨다.

남양장힐[南陽張頡]  남양인(南陽人) 장힐(張頡)로, 오신(吳申)과 동년(同年)에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고, 호부시랑(戶部侍郞)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왕안석(王安石) 오처사묘지명(吳處士墓誌銘)에 보인다. 오처사(吳處士)는 오신(吳申)이다.

남양종실[南陽宗室]  동한(東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를 가리킨다. 유수는 남양인(南陽人)으로, 처음에 용릉(舂陵)에서 기병(起兵)하여 왕망(王莽)을 멸망시키고 동한을 세웠다.

남양주계[南陽朱季]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에 주휘(朱暉)가 임회태수(臨淮太守)로 있으면서 정사를 잘하니, 그곳 관리와 백성들이 존경하고 그의 덕(德)을 기려 노래하기를 “강강(剛强)하고 정직하여 소신껏 자신의 일을 완수함은 남양(南陽)의 주계(朱季)로다. 아전은 그 위엄을 두려워하고 백성들은 그 은혜를 생각하도다.[彊直自遂 南陽朱季 吏畏其威 民懷其惠]”라고 하였는바, 주계(朱季)라고 한 것은 그의 자(字)가 문계(文季)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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