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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당[南學黨]~남해반포[南陔反哺]~남해백화[南陔白華]


남하자[南瑕子]  사람 이름인데, 행적은 미상이다.

남학[南學]  남경(南京)에 설치한 태학(太學).

남학[南學]  서울 남쪽에 있던 사학(四學) 중 하나. 조선시대 4부학당의 하나인 남학(南學)을 말한다. 현재의 남산 1호 터널 입구 부근에 있었다.

남학당[南學黨]  동학과 비슷한 시기에 전라도 지방에서 방성칠(房星七)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널리 포교되었던 종교 집단이다.

남해[南陔]  남해(南陔)는 시경(詩經) 소아(小雅) 생시(笙詩)의 편명이다. 생시(笙詩)는 제목만 있고 가사가 없어진 시를 말한다. 그 서(序)에 의하면 “남해는 효자가 부모를 봉양할 일로써 서로 경계한 노래이다.[南陔 孝子相戒以養也]”라고 하였다. 진(晉)나라 속석(束晳)이 이 시를 보완하여 지은 보망시(補亡詩)에 “남쪽 섬돌을 따라 올라가, 난초 캐어 어버이께 바쳐 올리리. 어버이 계신 곳 돌아보며 생각하느라, 마음이 편안할 틈이 없다오.[循彼南陔 言采其蘭 眷戀庭闈 心不遑安]”라는 말이 나온다. <詩補傳 卷16>

남해노량이충무묘비[南海露梁李忠武廟碑]  송자대전(宋子大全) 권171에 실려 있다. 임진왜란의 발발 배경, 충무공의 전공과 전략, 묘비를 만들게 된 동기 등이 상세하게 적혀 있는데 모두 592자이다. 이 묘비가 새겨있는 비석은 1660년 이순신의 호국충절을 기려 왕명에 의해 제작, 건립되었으며 현재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350번지에 있는 충렬사(忠烈祠)에 봉안되어 있다. 비석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의 비각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비석의 형태는 기다란 사각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숭록대부 의정부 우찬성 우암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정헌대부 의정부 좌참찬 동춘당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는 기록이 보인다.

남해반포[南陔反哺]  남해(南陔)는 시경(詩經)의 편명으로, 효자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읊은 시인데, 곡조만 있고 글은 없는 시이다. 뒤에 진(晉)나라 속석(束晳)이 보충하여 지었는데 그 글에 “시끄러운 저 숲의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는 먹을 것을 물어다가 어미를 먹인다.[嗷嗷林烏, 受哺于子.]”라고 하였다.

남해백화[南陔白華]  남해는 본디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인데, 지금은 그 제목만 있고 가사는 없으나 그 서(序)에 의하면 “남해는 효자가 부모를 봉양할 일로써 서로 경계하는 노래이다.[南陔 孝子相戒以養也]”라고 하였다. 백화(白華)는 역시 시경(詩經) 소아의 편명으로, 이 시 또한 제목만 있고 가사는 없는데 내용은 효자의 결백함을 노래한 것이라 한다.

남해시[南陔詩]  남해(南陔)는 시경(詩經)의 편명이다. 효자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읊은 시라고 하는데 가사가 전해지지 않는다. 이 시를 진(晉)나라 속석(束晳)이 보완하여 지었는데 “남쪽 밭두둑 따라 난초를 캐네. 어버이 생각할 적마다 마음이 바빠 겨를이 없네.[循彼南陔 言采其蘭 眷戀庭闈 心不遑安]”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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