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구지치[納溝之恥] 쓸모가 없다고 해서 치지도외(置之度外: 내버려 두고 상대하지 않음)되는 모욕을 말한다.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백 년 된 나무를 깎아 술잔을 만들고 청황의 무늬를 새겨 넣은 뒤에, 깎여진 나무토막들은 도랑 속에 버려지는 신세가 된다.[百年之木 破爲犠尊 靑黃而文之 其斷在溝中]”는 말이 나온다.
납극[蠟屐] 밀랍을 발라서 물기에 잘 젖지 않게 한 나막신.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산수 시인(山水詩人)인 사영운(謝靈運)이 임천내사(臨川內史)로 있을 때 밀랍을 칠한 나막신을 신고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였는데, 올라갈 때는 나막신의 앞굽을 빼고 내려올 때는 뒷굽을 빼서 걷기에 편하게 하였다 한다. <南史 卷19 謝靈運列傳>
납극[蠟屐] 납극(蠟屐)은 나막신에 불로 녹인 밀랍을 칠하여 광택이 나게 한 것을 가리킨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아량(雅量)에 “어떤 사람이 완부를 방문했는데 완부가 직접 불을 불며 나막신에 밀랍을 입히면서 탄식하여 말하기를 ‘평생 몇 켤레 나막신을 신을지 모르겠구나!’ 하고는 얼굴빛이 환해졌다.[或有詣阮 阮孚 見自吹火蠟屐 因叹曰 未知一生當著幾量屐 神色闲畅]”고 한다. 후에 ‘납극’은 유유자적한 생활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납극[蠟屐] 밀랍을 칠하여 광택이 나게 한 나막신. 동진(東晉) 때 조약(祖約)은 재물을 좋아하고, 완부(阮孚)는 신[屐]을 좋아하여 둘 다 누(累)가 되는 일이긴 하나 누가 좋고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이가 조약의 집에 가 보니 조약은 마침 돈을 세고 있다가 손님이 이르자 세던 돈을 농 뒤로 치우고 몸을 기울여 가리면서 매우 부자연스러운 표정이었고, 완부의 집에 가 보니 그는 마침 나막신에 밀랍을 칠하다가 스스로 탄식하기를 “내 일생에 이 신을 얼마나 더 신을는지 모르겠다.” 하며 기색이 자약하였으므로, 여기에서 비로소 승부가 판가름이 났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49 阮孚列傳>
납극[蠟屐] 진(晉) 나라 때 완부(阮孚)가 나막신을 좋아하여 항상 신에다 밀을 발라 광택(光澤)을 냈던 데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 완부전(阮孚傳)에 “완부는 나막신을 매우 좋아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가서 보니 완부가 나막신에 밀랍을 바르고 있었다.[孚性好屐 或有詣阮 正見其臘屐]”라고 하였다.
납극장록[蠟屐障簏] 납극(蠟屐)은 불로 밀랍(蜜蠟)을 녹여 나막신에 바르는 것이고, 장록(障簏)은 대나무 상자에 재물을 숨기는 것이다. 진(晉)나라 때 완부(阮孚)는 나막신을 매우 좋아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가서 보니 완부가 나막신에 밀랍을 바르며 말하기를 “일생 동안 몇 켤레의 나막신을 신을 수 있을까.”라고 하며 매우 한가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조약(祖約)은 재물을 매우 좋아했는데 어떤 사람이 그를 찾아가자 그는 재물을 헤아리고 있다가 급히 대나무 상자에 감추고 그래도 감추어지지 않자 자기 몸으로 감추며 몹시 당황한 빛을 보였다. 이 두 사람은 모두 한 가지씩 좋아하는 성벽(性癖)을 가지고 있지만 완부가 훨씬 품격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世說新語 雅量>
납기비[納其妃] 당 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은 아버지 이연(李淵)을 충동질하여 당나라를 세우고 수많은 전공을 세웠으나 태자의 자리를 형 건성(建成)에게 양보하고 진왕(秦王)이 되었다. 그런데 태자인 건성이 아우인 제왕(齊王) 원길(元吉)과 자신을 살해하려 하자, 선제공격을 가하여 건성과 원길을 죽이고 태자가 되었으며 원길의 아내인 소씨(巢氏)를 비(妃)로 맞이하였다. <通鑑節要 唐紀>
납기실이분부인[納其室以分婦人] 그 처첩의 재물을 들여와서 애첩들에게 나누어 줌. 납(納)은 취(取: 취함)이고, 실(室)은 처첩(妻妾)의 재물이다. <國語 晉語 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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