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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청장[納淸場]~납청정[納淸亭]~납촉[蠟燭]~납촉유심[蠟燭有心]


납청장[納淸場]  평안북도(平安北道) 정주군 납청(納淸) 시장(市場)에서 만드는 국수는 잘 쳐서 하였으므로 질기다는 소문(所聞)에서 유래(由來)한 말로, 호되게 얻어맞거나 눌리어 납작해진 사람이나 물건(物件)을 나타낼 때에 쓰는 말이다.

납청정[納淸亭]  몹시 납작하게 부서진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납청정은 본시 정자 이름으로 평북 가산(嘉山) 지경에 있었는데, 중국 사신 당고(唐皐)가 명명하고 사도(史道)가 기문을 지었으며, 그들의 시(詩)도 있었다. 그 후 정자는 허물러지고 다만 사신이 왕래할 적에 말을 갈아타던 체마관(遞馬館)이 있었는데, 거주민들이 시장을 개설하였다가, 병자호란 때에 청병(淸兵)이 쳐들어와서 여지없이 유린하고 약탈하여 갔다는 데에서 생긴 말이다.

납청정[納淸亭]  평안도 가산(嘉山)에 있는 정자 이름이다. 명나라 사신 당고(唐皐)가 이 정자의 이름을 지었고 사도(史道)가 기(記)를 썼으며, 또 읊은 시도 있다. 역대 중국 사신들과 이를 맞으러 간 우리나라 문인들의 시가 많이 전한다.

납청정[納淸亭]  평안도 정주목(定州牧) 동쪽 40리에 있는 정자인데, 중국 사신 당고(唐皐)가 이름을 짓고, 사도(史道)가 기(記)를 썼다.

납촉[蠟燭]  당련하세시기(唐輦下歲時記)에 “청명절에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로 붙인 불을 가까운 신하들에게 나눠주었다.[淸明日取楡柳之火以賜近臣]”라고 하였다. 불을 피우지 않는 한식날 황제가 가까운 신하들에게 새로 붙인 불을 나눠주었다.

납촉[蠟燭]  한식(寒食)이 지나면 청명(淸明)이다. 당대(唐代)에는 그 날 궁중에서 유류(榆柳: 느릅나무, 버드나무)의 불을 근신(近臣)에게 내렸다. 서경잡기(西京雜記)에도 “한식(寒食)은 금화(禁火)의 날이며, 후가(侯家)에 납촉(蠟燭)을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후당서(後唐書) 예의지(禮儀志)’에도 “청명(淸明)에 기사(騎士) 불(火)을 전(傳)한다”라고 하였다.

납촉[蠟燭]  납촉은 밀초를 가리키는데, 진(晉)나라 때 부호(富豪)였던 석숭(石崇)은 사치(奢侈)를 매우 숭상하여 심지어는 밀초를 밥 짓는 땔감으로 쓰기까지 했다고 한다.

납촉[蠟燭]  당서(唐書) 백관지(百官志)에 의하면, 좌상서령(左尙書令) 1인이 궁중의 납촉(蠟燭)을 관장한다 하였고, 또한 옛날 청명(淸明), 한식(寒食) 때에는 백관에게 납촉을 내렸던바, 고시(古詩)에 “한식이라 불을 금하는 날에, 공후의 집에 납촉을 내리누나.[寒食禁火日 賜侯家蠟燭]”라고 하였다.

납촉[蠟燭]  납촉은 밀랍으로 만든 초이다. 한굉(韓翃)의 시 한식즉사(寒食即事)에 “날 저무는 한나라 궁궐에 납촉을 전하니, 가벼운 연기가 오후의 집으로 흩어져 들어가네.[日暮漢宮傳蠟燭 輕煙散入五侯家]”라고 읊었다.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8 禁煙鑽火>

납촉유심[蠟燭有心]  두목(杜牧)의 시 증별(贈別)에 “촛불도 마음 있어 도리어 이별을 슬퍼하며, 나 대신 날 밝을 때까지 눈물 흘려 준다네.[蠟燭有心還惜別 替人垂淚到天明]”라고 한 데서 보인다. 유심(有心)은 중의적(重意的)인 표현으로 납촉(蠟燭)에 있는 심지를 말하기도 하고, 시인(詩人)의 마음을 비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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