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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팔죽[臘八粥]~납폐[納陛]~납폐[納幣]~납피몽두[衲被幪頭]


납팔죽[臘八粥]  중국 남방에서는 납일(臘日)이 음력 12월 8일로 고정되어 있다. 이날 사찰에서는 크게 설법회를 열고 공양을 하며, 칠보 그릇에 다섯 가지 곡물로 쑨 죽을 담아 올린다. 이것을 납팔죽(臘八粥)이라고 한다. 혹은 일곱 가지 곡물로 쑤기 때문에 칠보죽(七寶粥)이라 한다는 설도 있다. 납팔죽의 유래는 크게 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역귀를 물리치는 중국 풍속의 전통이라는 설이다. 고대의 제왕 전욱의 아들이 셋이 있는데 이들이 죽어서 하나는 강의 물귀신이 되고, 하나는 산속의 도깨비가 되고, 막내는 집 속에 숨어살며 아이들을 놀라게 하는 소귀(小鬼)가 되었다고 한다. 납일에 납팔죽을 먹고 굿을 하는 것은 이 소귀를 쫓기 위함이다. 이 설은 공공씨의 아들이 역귀가 되어 팥죽을 먹으며 물리친다는 동지팥죽 풍습과 거의 같다. 두 번째는 인도에서 건너온 풍속이라는 설이다. 12월 8일은 석가모니가 도를 깨우친 날인데, 제자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둘러앉아 설법회를 열고 죽을 나누어 먹었다는 주장이다.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 권12 납팔죽(臘八粥), 맹원로(孟元老)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 오자목(吳自牧)의 몽양록(夢粱錄), 주밀(周密)의 무림구사(武林舊事) 등에 보인다.

납편도[蠟鞭塗]  밀랍을 채찍에 바름. 본질은 형편없으면서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꾸밈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의 편고(鞭賈)에 “부잣집 아들이 노란 색의 반들반들한 채찍을 5만 전(錢)을 주고 사서 아끼며 자랑하였는데, 끓는 물로 씻어 내자 윤기 없고 희끗한 색깔의 본색이 드러났다. 노란 것은 치자로 물들였기 때문이고 윤이 난 것은 밀랍을 칠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또 그 채찍으로 말을 치자 대여섯 조각으로 끊어지고 말았고, 말이 날뛰는 바람에 땅에 떨어져 다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납폐[納陛]  궁전의 터를 파서 섬돌[陛]을 만들어 높은 사람이 신분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전대(殿臺)에 오르게 하는 것이다. 이아(爾雅) 석명(釋名) 석궁실(釋宮室)에 “폐(陛)는 낮다는 뜻이니, 높고 낮음이 있는 것이다. 천자(天子)의 궁전을 납폐(納陛)라 하니,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는 계제(階梯)임을 말한 것이다.[陛 卑也 有尊卑也 天子之殿 謂之納陛 言所以納人言之階陛也]”라고 하였고, 백호통의(白虎通義) 고출(考黜)에 “옛날 임금이 현자(賢者)에게 낮추어 계단 한 등급을 내려가서 예우하였으므로 현자를 등용할 적에 납폐(納陛)를 하사하여 우대한 것이다.[古者人君下賢 降階一等以禮之 古進賢 賜之納陛以優之也]”라고 하였다.

납폐[納幣]  납폐는 혼례(婚禮)의 육례(六禮)의 하나로 납채(納采)와 같은데, 혼인할 때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혼인하기를 요청하며 보내는 예물(禮物)이다. 육례(六禮)는, 중매(中媒)의 말을 채택해서 혼인(婚姻)을 허락해 준 데 대해 감사하는 뜻을 여자 측에 전하는 납채(納采), 여자의 이름을 묻는 문명(問名), 남자 측에서 점(占)을 치고 길(吉)함을 통보(通報)하는 납길(納吉), 남자 측에서 예물(禮物)을 보내는 납폐(納幣), 남자 측에서 길일(吉日)을 잡아 여자 측에 통보(通報)하는 청기(請期), 신랑이 직접 가서 신부를 맞이하는 친영(親迎)이다.

납피몽두[衲被幪頭]  머리에 누더기를 씀. 납피(衲被)는 기운 이불을 가리킨다. 몽두(幪頭)는 ‘머리에 뒤집어쓰다’의 뜻으로 蒙頭(몽두)와 같다. 석두희천(石頭希遷)의 초암가(草庵歌)에 “기운 이불 뒤집어쓰면 만사가 그만이라, 이때에 산승이 해야 할 일 아무것도 없네.[衲被幪頭萬事休 此時山僧都不會]”라고 한 데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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