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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명당[內明堂]~내명외랑[內明外朗]~내모[嬭母]~내모가[來暮歌]


내맥[來脈]  풍수설에서 주산(主山)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를 이르는 말이다.

내면묘사[內面描寫]  인간의 정신 심리・감정・기분 따위의 내적인 면을 문장으로 그려내는 일을 이른다.

내명당[內明堂]  묘 앞의 평평한 곳으로, 청룡(靑龍)과 백호(白虎)가 감싸고 있는 안쪽을 이른다.

내명삼후[乃命三后]  서경(書經) 여형(呂刑)에 나오는 말로, 세 후(后)는 백이(伯夷), 우(禹), 직(稷)을 가리킨다. 백이는 예(禮)를, 우는 수토(水土)를, 직은 농사를 맡아 백성을 구휼하게 하였다고 되어 있다.

내명외랑[內明外朗]  인물(人物)의 재덕(才德)을 형용(形容)하여 이르는 말이다. 재주와 덕망을 겸비한 것을 비유한다. 자명(慈明)은 후한(後漢) 때의 명사인 순상(荀爽)의 자이고, 숙자(叔慈)는 그 형인 순정(荀靖)의 자이다. 이들은 순숙(荀淑)의 아들로 이들 형제 여덟 사람이 모두 재주가 뛰어났고 집안이 화목한 데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므로 당시에 이들 형제를 일러 팔룡(八龍)이라 칭하였다. 어떤 사람이 허장(許章)에게 묻기를, “순상과 순정 둘 중에 누가 더 나은가?”라고 하자, 허장이 대답하기를 “둘 다 옥(玉)인데, 자명은 외면이 밝은 옥이고 숙자는 내면이 온윤한 옥이다.[二人皆玉也, 慈明外朗, 叔慈內明.]”라고 하였다. <高士傳 卷下> 순상은 12세 때 이미 춘추(春秋)와 논어(論語)에 정통하여 ‘자명무쌍(慈明無雙)’이라는 칭찬을 받을 정도로 재기가 출중하였다.

내모[嬭母]  유모(乳母)와 같은 뜻인데, 남조 송(南朝宋) 때 하승천(何承天)이 연로하여 비로소 장작좌랑(將作佐郞)에 제수되자, 다른 여러 좌랑들은 모두 명가(名家)의 연소자들이었으므로, 순백자(荀伯子)가 하승천을 조롱하여 항상 내모(嬭母)라 호칭했던 데서 온 말이다. 송서(宋書) 하승천전(何承天傳)에 “하승천이 연로하자 순백자가 그를 놀려 내모라 불렀더니, 하승천이 ‘경은 봉황장구자(鳳皇將九子)라고 해야지 내모가 무슨 말이오?’라고 말했다.”라 하였다.

내모[來暮]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라는 뜻의 ‘내하모(來何暮)’의 준말이다. 후한서(後漢書) 권31 염범열전(廉范列傳)에 “성도(城都)에 백성들이 매우 많아 집들이 밀집해 있으므로 백성들에게 야간에 일을 못 하게 하여 화재를 예방하였다. 그런데 서로 숨어 불을 지피는 바람에 날마다 불이 났다. 염범이 종전의 법을 삭제하고 물만 비축하도록 하니, 백성들이 편리하게 여겨 노래하기를 ‘염숙도는 왜 그리 늦게 왔는가. 불을 금하지 않으니, 백성이 편안히 일할 수 있네. 평생 동안 저고리가 없더니, 지금 바지 다섯 벌이 있다네.[廉叔度 來何暮 不禁火 民安作 平生無襦 今五袴]’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내모가[來暮歌]  선정(善政)을 찬미하는 백성들의 송가(頌歌)라는 뜻이다. 내모는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는 뜻의 ‘내하모(來何暮)’의 준말이다. 동한(東漢)의 염범(廉范)이 촉군 태수(蜀郡太守)로 부임하여, 금화(禁火)와 야간 통행금지 등의 옛 법규를 개혁하며 주민 편의 위주의 선정을 펼치자, 백성들이 “우리 염숙도여 왜 이리 늦게 오셨는가. 불을 금하지 않으시어 백성 편하게 되었나니, 평생토록 저고리 하나 없다가 지금은 바지가 다섯 벌이라네.[廉叔度 來何暮 不禁火 民安作 平生無襦今五袴]”라는 찬가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숙도(叔度)는 염범의 자(字)이다. <後漢書 卷31 廉范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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