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內司] 내사는 내수사(內需司)이다. 내사에서 보낸 관원을 별차(別差)라 하여 독자적으로 치제(致祭)하였다. <正祖實錄 15年 10月 28日>
내사[內舍] 부인이 거처하는 안채. 고대에 여인들이 거주하던 내실(內室)을 이른다.
내사[內舍] 생도(生徒)가 처음 태학에 들어갈 때는 외사(外舍)로 가고, 여기에서 성적이 우수하면 선발되어 내사(內舍)로 가고, 또 여기에서 성적이 우수하면 선발되어 상사(上舍)로 올라간다. <宋史 哲宗紀>
내사[內舍] 지방 관아의 안채로 즉 내아(內衙)이다.
내사[內賜] 임금이 물건을 신하에게 하사하는 것이다.
내사[內使] 궁 안에서 파견된 벼슬아치를 이른다.
내사[內史] 관명. 천자의 좌우에서 천자가 작록(爵祿)・치폐(置廢) 등의 업무에 관해 수시로 전례(前例) 또는 법식(法式) 등을 하문할 때, 이에 대한 자문 역할을 하였다.
내사[內史] 국가의 법전을 맡아보던 벼슬이다.
내사[內史] 서주(西周) 때 시작된 관직의 이름으로 궁중내의 간책(簡冊)을 관리하고 제후와 경대부들의 임면에 관한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였다.
내사[內史] 내사(內史)는 지방관의 이름이다. 한(漢)나라 때에는 경사(京師)를 맡아 다스렸고, 진(晉)나라 때에는 태수(太守)를 고쳐 내사성(內史省)이라 하였다.
내사[內史] 진(秦)나라의 내사(內史)는 경사(京師)를 다스리는 관직이며, 내사가 경기(京畿) 부근도 다스렸기 때문에 이를 따라 경기 지방도 내사(內史)라 하였다.
내사[內史] 진한(秦漢) 때 경기(京畿) 지방에 설치하여 군을 대신한 행정구역의 이름이다. 진나라에서 처음 시작하여 함양을 관할 구역으로 시작하여 한경제 2년 좌우로 나뉘어졌다가 무제에 이르러 우내사는 경조윤(京兆尹), 좌내사는 좌풍익(左馮翊), 새로 신설한 우부풍(右扶風)으로 행정구역을 나누고 통칭하여 삼보(三輔)라 했다.
내사[內史] 주대(周代)의 대부(大夫) 벼슬. 작위(爵位)와 녹봉(祿俸)을 폐지하거나 설치하는 일과 제후(諸侯)・고(孤)・경(卿)・대부(大夫)의 책명(策命)에 관한 일을 관장한다.
내사[內史] 춘관의 속관으로, 제왕의 8대 통치 방법(작위 수여, 녹봉 급여, 관직 폐지, 관직 설치, 사형, 사형 감면, 급여, 박탈)을 운용하는 법의 부본(副本)을 작성·관리하여 태재(太宰)의 역할 보조, 국법과 정령(政令)의 부본(副本)을 작성하여 제후국·관부·채읍의 정사와 회계 고찰, 상주문(上奏文)의 접수와 입계(入啓), 책명(策命) 때 책서(策書) 작성, 녹봉·상사(賞賜)에 대한 문서의 작성·반포, 왕명서의 초사(抄寫)와 부본 작성 등을 담당하였다. <周禮 春官 內史>
내사[內史] 관직명. 진(晉)나라 왕희지를 말한다. 그가 회계군내사(會稽郡內史)로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진서(晉書) 왕희지전(王羲之傳)에서 “왕희지는 초예에 능했고 우군장군과 회계내사를 지냈다.[羲之善草隸, 官右軍將軍, 會稽內史.]”라고 했는가 하면 백거이(白居易)가 엮은 백씨육첩사류집(白氏六帖事類集)에서는 “왕희지가 손잡이가 달린 둥근 부채에 초서로 글씨를 썼다.[王右軍草書於團扇]”라고 하였다. 시대에 따라 이름은 같아도 하는 일이 달랐는데 당조(唐朝)에서는 당고조(唐高祖) 무덕(武德) 초에 내사성(內史省)을 설치하고 3년 뒤에는 중서성(中書省)으로 바꿨는데 나중에 중서성의 관원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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