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내원[㮈苑]~내원당[內願堂]~내원장[內願狀]~내원해인[耐怨害忍]


내원[奈苑]  절을 이른다. 암라수원(菴羅樹苑)에서 유래한 말이다.

내원[㮈苑]  내원(㮈苑)은 내녀(㮈女)의 동산이라는 말인데, 범어 āmra의 의역으로, 암몰라원(菴沒羅園)으로 음역된다. 내수(㮈樹)에서 출생했기 때문에 내녀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하는데, 뒤에 마갈다국(摩竭陀國)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의 왕비가 되었으며, 양의(良醫) 기바(耆婆)를 낳았다고 한다. 그 동산은 중인도(中印度) 폐사리(吠舍釐 Vaiśālī) 성 부근에 있었으며, 내녀가 불타에게 바치자 불타가 이곳에서 유마경(維摩經)을 설했다고 한다.

내원당[內願堂]  대궐에 설치하여 왕실(王室)의 명복(冥福)을 빌던 절이다. 죽은 사람의 화상(畫像)이나 위패(位牌)를 모시고 그 원주(願主)의 명복을 비는 법당(法堂)을 원당(願堂)이라 하는데, 궁중(宮中)에 있는 것을 내원당이라 한다. 이때에는 내외를 막론하고 궁중의 명복을 비는 절을 내원당이라 일컬었다.

내원사[內院寺]  내원(內院)은 묘향산에 있는 내원사(內院寺)를 말한다.

내원성[來遠城]  압록강의 검동도(黔同島)에 있던 성(城)이다. 본래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에 여진인의 소굴이 되었는데, 성종 10년(991)에 거란이 압록강 강변에 위구성(威寇城)・진화성(振化城)과 함께 내원성을 다시 쌓아 여진이 송나라와 왕래하는 것을 막고 아울러 고려의 서북면을 압박하였다. 나중에 내원성은 고려와 거란 사이를 왕래하는 요충지가 되었다.

내원암[內院庵]  경기 북부의 중심 사찰이었던 조선후기 봉선사(奉先寺)의 말사로,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사찰에는 19세기에 화원들에 의해 그려진 괘불도(掛佛圖)가 유명하다.

내원장[內願狀]  나라에서 해마다 중춘(仲春)과 중추(中秋)에 관원을 보내어 산・바다・강 등의 신에게 제사지내어 비와 바람이 순조롭고 곡식이 잘 되게 하여 주기를 비는 일이다.

내원통암[內圓通菴]  마하연(摩訶衍)의 부속암자이다.

내원해인[耐怨害忍]  진리를 깨달아 알 때까지 참고 견디어야 할 세 가지인 삼인(三忍) 가운데 하나로, 남의 해(害)침을 받고도 앙갚음할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을 이른다. 참고로, 삼인(三忍)은 내원해인(耐怨害忍: 남의 해(害)침을 받고도 앙갚음할 마음을 내지 않는 것), 안수고인(安受苦忍: 어떠한 괴로움 가운데도 참고 견디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참는 것), 체찰법인(諦察法忍: 제법(法)의 본체가 생멸하지 아니하는 이치를 자세히 관찰하여, 그 진실함을 깨닫고 마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참는 것)이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