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국리우[魯國嫠憂] 노(魯)나라 과부의 근심. 자신의 사사로운 일은 잊고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말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24년 조에 “과부가 베 짜는 북실이 끊어질 것은 걱정하지 않고 천자의 나라인 주나라가 망할 것을 걱정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그 재앙이 자기에게도 미칠 것이라고 여겨서이다.[嫠不恤其緯 而憂宗周之隕 爲將及焉]”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 열녀전(烈女傳) 칠실녀(漆室女)에 “노(魯)나라 칠실(漆室)에 살던 처녀가 시집을 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는 걱정하지 않고, 나라의 임금이 늙고 태자가 어린 것을 걱정하여 기둥에 기대어 울자, 이웃집 부인이 비웃으며 ‘이는 노나라 대부의 근심이지 그대가 무슨 상관인가?’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분수에 지나친 근심을 뜻하는 말인데, 일반적으로 자신의 말에 대한 겸사(謙辭)로 쓰인다.
노국분양[潞國汾陽] 노국(潞國)은 송 신종(宋神宗) 때의 재상 문언박(文彦博)의 봉호이고, 분양(汾陽)은 당(唐)나라 때의 명장(名將)으로 분양군왕(汾陽郡王)에 봉해진 곽자의(郭子儀)를 가리킨다. 문언박은 장수를 누려 부필(富弼), 사마광(司馬光) 등과 함께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고, 곽자의는 자손이 많고 다복(多福)하기로 유명하다.
노국영광[魯國靈光] 노(魯)나라 영광전(靈光殿). 노(魯)나라는 전한(前漢)의 제후국이며, 영광전(靈光殿)은 노나라에 있던 궁궐의 이름인데, 마지막으로 남은 원로 석학(碩學)이나 유현(儒賢)을 비유한다. 영광전은 한(漢)나라 경제(景帝)의 아들 노 공왕(魯恭王)이 세운 궁전으로 산동(山東) 곡부현(曲阜縣) 동쪽에 있었는데, 한나라 중기에 도적 떼에 의하여 수도 장안(長安)의 미앙궁(未央宮)과 건장궁(建章宮) 등은 다 불탔으나 영광전만은 그대로 보존되었다. 후한(後漢)의 왕연수(王延壽)가 지은 노영광전부서(魯靈光殿賦序)에 “서경(西京)의 미앙궁과 건장궁이 모두 파괴되어 허물어졌는데도, 영광전만은 우뚝 홀로 서 있었다.[西京未央, 建章之殿, 皆見隳壞, 而靈光巋然獨存.]”라고 보인다.
노국이우[魯國嫠憂] 자기 신분에 맞지 않는 근심을 뜻한다. 주(周)나라 때 어떤 나이 어린 과부가 자기 베틀의 실이 떨어질까 걱정하지 않고 종주(宗周)가 위태로울까만을 걱정하였으며, 노(魯)나라 목공(穆公) 때 칠실(漆室)이라는 고을에 사는 나이 어린 여자가 시집갈 걱정은 하지 않고 노나라의 임금은 혼몽하고 태자는 제대로 서지 못하여 나라와 백성이 어려움을 겪을까만을 걱정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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