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可惜가석 / 아쉬운 세월 / 杜甫두보


花飛有底急[화비유저급]   꽃잎은 어이 저리 급히 날리나

老去願春遲[노거원춘지]   늙어가니 봄이 더뎠으면 좋겠네

可惜歡娛地[가석환오지]   아쉬워라 즐거이 노는 자리도

都非少壯時[도비소장시]   이미 젊은 시절이 아니로구나

寬心應是酒[관심응시주]   마음 누그리기에는 응당 술이요

遣興莫過詩[견흥막과시]   흥 돋우기 시보다 나은 게 없지

此意陶潛解[차의도잠해]   이런 흥취 도잠이나 알았었는데

吾生後汝期[오생후여기]   만나기엔 나의 생이 뒤늦었구나

<可惜가석 / 흐르는 세월 애석해라 / 杜甫두보>


  • 두보[杜甫]  성당기(盛唐期)의 시인으로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야로(少陵野老), 두릉야로(杜陵野老), 두릉포의(杜陵布衣) 등이 있다. 양양(襄陽) 지방 출신으로 과거에 응시했으나 실패하고 40대인 천보(天寶) 14년(755년)에야 비로소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안녹산(安祿山)의 난 당시 장안에서 반군에게 잡혔다가 탈출, 숙종(肅宗)의 진영에 합류하여 좌습유(左拾遺)와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을 지낸 적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두습유(杜拾遺), 두공부(杜工部) 등으로 불렀고, 또 장안성 밖 소릉(少陵)의 초당(草堂)에서 지낸 적이 있기 때문에 두소릉(杜少陵), 두초당(杜草堂)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는 시선(詩仙) 이백(李白)과 함께 이두(李杜)로 불렸는데, 두목(杜牧)과 이상은(李商隱)의 합칭인 소이두(小李杜)와 구별하기 위해 대이두(大李杜)라고도 부른다. 문학을 발판 삼아 벼슬로 나아가려던 그의 꿈이 큰 성취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짧은 한때를 빼고는 평생을 가난과 병으로 고생을 겪어야 했다. 중국의 서북 지역을 유랑하다가 결국 병사했다. 벼슬살이와 달리 문학, 특히 시에서 이룬 성취가 대단하였다. 남긴 시가 1500여 수에 달하며 작품집으로 두공부집(杜工部集)이 있다. 후세 사람들에게 그 자신은 시성(詩聖)으로, 또 그의 시는 시사(詩史)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 유저[有底]  속사정[내막]을 알다. 마음속으로 자신이 있다. 속이 든든하다. 돈이 있다.
  • 노거[老去]  노년. 만년. 세상을 뜨다. 첨차 늙어가다. 점점 노쇠해가다. 구양수(歐陽脩)의 시 증왕개보(贈王介甫)에 “나이 들어도 포부가 사라지지 않을 테니, 뒤에 올 어떤 이가 그대와 다툴 수 있겠는가.[老去自憐心尙在 後來誰與子爭先]”라고 하였다.
  • 가석[可惜]  몹시 아까움. 섭섭하다. 아쉽다. 애석하다. 아깝다. 유감스럽다.
  • 환오[歡娛]  기쁘고 즐거움. 기뻐하고 즐거워함. 환락(歡樂).
  • 관심[寬心]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다. 마음을 넓게 가지다. 마음을 편히 먹다. 안심하다.
  • 응시[應是]  생각해보니 그렇다. 반드시 그렇다. 틀림없이. 분명히. 소식(蘇軾)의 사(詞) 복산자(卜算子)·감구(感舊)에 “술자리에서 서로 보고 놀라지 마라, 분명히 얼굴이 늙어 있을 테니.[莫惜尊前仔細看 應是容顔老]”라고 하였다.
  • 견흥[遣興]  흥을 돋우다. 흥겨워하다. 글을 짓거나 여흥을 하며 흥을 돋우어 마음을 달래다.
  • 도잠[陶潛]  도연명(陶淵明). 동진(東晉) 말기부터 남조(南朝) 송(宋: 유송劉宋) 초기 사람이다. 시인이자 문학가로 청신하고 자연스러운 시문으로 시명을 얻었다. 강주(江州) 심양(尋陽) 시상(柴桑)에서 태어났다. 자는 원량(元亮)이다. 송(宋)나라에 와서 이름을 잠(潛)으로 바꾸었다. 일설에는 연명(淵明)이 그의 자(字)라고도 한다. 증조부 도간(陶侃)은 동진(東晉)의 개국공신으로 관직이 대사마에 이르렀으며, 조부 도무(陶茂)와 부친 도일(陶逸)도 태수를 지냈다. 29세 때에 벼슬길에 올라 주(州)의 좨주(祭酒)가 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사임하였다. 그 후 생활을 위하여 진군참군(鎭軍參軍)・건위참군(建衛參軍)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항상 전원생활을 동경한 그는 팽택현령(彭澤縣令)이 되었으나 80여 일 만에 벼슬을 버리고, 41세에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전원으로 돌아와 문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였다. 고향에 은거한 뒤에 다시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63세에 세상을 떴다. 그의 사후에 평소 그와 가깝게 지냈던 이들이 그에게 정절선생(靖節先生}이란 시호를 주어 불렀다. 양(梁)나라 종영(鍾嶸)의 시품(詩品)에 “고금의 은일시인 가운데 첫머리[古今隱逸詩人之宗]”라 평가했을 만큼 그의 시풍이 중국문학사에 남긴 영향이 매우 크다. 주요 작품으로 음주(飮酒)・귀원전거(歸園田居)・도화원기(桃花源記)・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귀거래사(歸去來辭) 등이 있다. 도연명이 직접 지은 만사(挽辭)는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에 의만가사(擬挽歌辭)라는 제목으로 3수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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