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군[勞軍] 군대를 위문하다. 노사(勞師).
노군[老君] 노군은 노자(老子)의 존칭으로, 도교에서 노자를 교조(敎祖)로 삼아 그를 높여서 태상노군(太上老君)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노군[魯君] 노(魯)나라 공공(共公), 이름은 분(奮)이다.
노군[魯郡] 지명. 현재의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연주(兗州) 일대를 가리킨다. 원화군현지(元和郡縣志)에 “현 동남쪽 7리 되는 곳 수수 오른쪽에 요사가 있다.[堯祠在縣東南七里, 洙水之右.]”고 하였다.
노군보옥지[勞君步玉趾] 주희(朱熹)가 장식(張栻)과 이별할 때 지은 시에 “그대가 수고롭게 옥 같은 걸음 떼어, 가는 이 몸 전송하러 남산에 올랐구려.[勞君步玉趾 送我登南山]”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晦庵集 卷5 二詩奉酬敬夫贈言竝以爲別>
노군후천[老君後天] 도교(道敎)의 태상노군(太上老君)은 천지가 다한 뒤에까지 산다 하였다. 노군(老君)은 노자(老子)의 존칭이다.
노궁[魯宮] 노 공왕(魯恭王) 유여(劉餘)의 궁실을 가리킨다. 그가 한 무제(漢武帝) 말년에 궁실을 확장하던 중에 우연히 공자가 살던 옛집의 벽 속에서 고문상서(古文尙書)와 예기(禮記), 논어(論語), 효경(孝經) 등 수십 편의 서책을 얻었다는 기록이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나온다.
노궁[魯宮] 노궁(魯宮)은 시경(詩經) 노송(魯頌)의 비궁(閟宮)을 가리킨다. 그 가사에 “노후(魯侯)가 잔치하며 기뻐하시니 훌륭한 아내와 장수하시는 어머니가 계시도다.[魯侯燕喜, 令妻壽母.]”라고 하고 “삼수(三壽)로 벗을 맺어 산과 같고 구릉과 같으소서.[三壽作朋, 如岡如陵.]”라고 하였다.
노궁고정[魯弓郜鼎] 노궁(魯弓)은 노(魯)나라에서 만든 활이고, 고정(郜鼎)은 고(郜)나라에서 만든 대정(大鼎)이다. 모두 국가적 보물이다. 춘추 시대 송(宋)나라의 태재(太宰) 독(督)이 상공(殤公)을 죽이고 정(鄭)나라에서 풍(豐)을 맞아다가 옹립하였는데, 주위에 있는 나라들이 이를 규탄할까 두려워하여 먼저 노(魯)나라 환공(桓公)에게 고정을 뇌물로 주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환공(桓公) 2년 경문에 “여름 4월에 송나라에서 고대정(郜大鼎)을 가져 와서, 무신일에 태묘(太廟)에 들여놓았다.[夏四月 取郜大鼎于宋 戊申納于太廟]”라는 구절이 있다.
노궁노시[盧弓盧矢] 검은 칠을 한 활과 화살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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