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손[盧多遜] 송(宋)나라 태조와 태종 때의 문신. 태원을 평정하고 돌아와 병부 상서가 되었으며, 송 태조(宋太祖)를 도와 천하를 평정한 조보(趙普)를 공격하여 조정에서 축출하여 정위(丁謂)와 함께 간신(奸臣)으로 불렸다. 진왕(秦王) 정미(廷美)의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집안 전체가 애주(崖州)로 유배갔고, 배소(配所)에서 죽었다.
노다손[盧多遜] 송나라 회주(懷州) 하내(河內) 사람이다. 개국 공신 조보와 불화가 심하여 그를 공격하여 조정에서 축출하였고 태종이 즉위하자 정승이 되었으나, 진왕(秦王) 정미(廷美)의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애주(崖州)로 유배되어 죽었다. 노다손이 처음 애주로 폄척되자 간의대부 이부가 조보에게, 애주가 비록 바닷속에 있어도 풍토가 순하고, 춘주(春州)는 내륙에 있지만 사람이 반드시 죽는 곳이니 그곳으로 노다손을 보내자고 부추겨서 허락을 받았다. 한 달여 뒤에 이부도 일에 연루되어 선주(宣州)로 폄척되었는데, 조보가 지난 일을 황제께 아뢰니 즉시 이부를 춘주로 옮기게 하였고, 이부는 그곳에 부임하여 한 달여 만에 죽었다. <宋史全文 卷3 宋太宗一>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31 仕進部 春州惡地> <宋史 卷256 趙普列傳> <宋史 卷264 盧多遜列傳>
노단[露壇] 평지 위에 흙이나 돌로 쌓은 단으로, 군대를 사열하거나 제사를 지내는 데 사용한다.
노담[老耼] 노자(老子)이다. 사기(史記) 권63 노자열전(老子列傳)에 “노자는 초(楚)나라 고현(苦縣) 여향(厲鄕) 곡인리(曲仁里) 사람인데, 성은 이씨(李氏), 이름은 이(耳), 자(字)는 담(聃)이며, 주(周)나라 수장실(守藏室)의 사(史)였다.”라고 하였다. 도덕경(道德經)의 저자로 전해진다. 노자가 일찍이 주(周)나라에서 사관(史官)으로 있다가 주나라가 쇠약해진 것을 보고는 주나라를 떠났는데, 노자가 서쪽으로 가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을 때 관령(關令)으로 있던 윤희(尹喜)가 이에 앞서 함곡관 위에 자색 기운이 떠 있는 것을 보았으며, 그로부터 얼마 뒤에 노자가 동쪽에서 청우(靑牛: 푸른 소)를 타고 왔다고 한다. <列仙傳>
노담자기[老聃紫氣] 노담은 노자(老子)를 가리킨다. 노자가 일찍이 주(周)나라에서 사관(史官)으로 있다가 주나라가 쇠해진 것을 보고는 주나라를 떠나갔는데, 노자가 서쪽으로 가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을 때 관의 영(令)으로 있던 윤희(尹喜)가 이에 앞서 함곡관 위에 자색 기운이 떠 있는 것을 보았으며, 그로부터 얼마 뒤에 노자가 동쪽에서 푸른 소를 타고 왔다고 한다. <列仙傳>
노담지역[老聃之役] 노담의 제자. 役(역)은 노담의 부림을 받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임희일(林希逸)이 “役(역)은 徒(도)이니 문인 제자이다.[役 徒也 門人弟子也]”라고 풀이하였다.
노당[魯堂] 공자(孔子)의 전당(殿堂)을 가리킨다. 후에는 유가(儒家)의 강학(講學) 장소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노당기리[怒當其理] 노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는 말로, 남의 잘못을 보았을 때 그의 잘못이 크면 크게 노하고 그의 잘못이 작으면 작게 노한다는 말이다.
노당익장[老當益壯] 나이가 들어도 패기에 차고 오히려 굳건함. 사람은 늙을수록 더욱 기운을 내어야 하고 뜻을 굳게 해야 함. 줄여서 노익장(老益壯)이라고도 쓴다. 후한(後漢)의 명장 마원(馬援)이 일찍이 농(隴), 한(漢) 지방을 전유(轉游)할 적에 항상 빈객들에게 말하기를 “대장부는 뜻을 가짐에 있어 곤궁할수록 더욱 견고해져야 하고, 늙을수록 더욱 강장해져야 한다.[大丈夫爲志 窮當益堅 老當益壯]”라고 하였다. <後漢書 馬援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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