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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도[老饕]~노도[鷺翿]~노도유탕[魯道有蕩]~노독거남[魯獨居男]


노덕서원[老德書院]  함경남도 북청군 북청읍에 있던 서원이다. 1627년(인조5) 지방 유림의 공론으로 이항복(李恒福)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1686년(숙종12)에는 이곳에 유배된 바 있었던 김덕성(金德誠)과 정홍익(鄭弘翼)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1687년에 ‘노덕(老德)’이라고 사액되었다. 1694년 민정중(閔鼎重)과 오두인(吳斗寅)을, 1708년에 이상진(李尙眞)과 이세화(李世華)를 추가 배향하였다. 민정중의 호가 노봉(老峰)이고, 오두인의 호가 양곡(陽谷)이다. 민정중은 함경도 관찰사, 오두인은 북청 판관을 지냈기에 이곳에 배향되었다.

노도[老饕]  탐욕이 많은 늙은이, 또는 식탐이 많은 늙은이를 이른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文公) 18년 조(條)에 “세상 사람들이 흉악한 세 가지를 들어 도철이라고 했다.[天下之民, 以比三凶, 謂之饕餮.]”라고 하였는데, 그 주(註)에 “재물을 탐하는 것이 도(饕)요, 음식을 탐하는 것이 철(餮)이다.[貪財爲饕, 貪食爲餮.]”라고 하였다.

노도[鷺翿]  백로(해오라기) 깃으로 된 일산(日傘). 백로 깃으로 만들어 춤출 때 사용하는 가리개. 시경(詩經) 진풍(陳風) 완구(宛丘)의 끝 구에 “완구(宛丘)에 모여 질장 구[缶]치며 방탕하게 노니는 그대, 겨울도 여름도 없이 노도(鷺翿)를 세워 놓고 춤을 추네.[坎其擊缶 宛丘之道 無冬無夏 値其鷺翿]”라고 하였다. 집전(集傳)에는 노도(鷺翿)가 아니라 노우(鷺羽)로 되어 있고 춤추는 자가 손에 잡는 것이라 하였다.

노도광풍[怒濤狂風]  성난 파도와 미친 듯이 사납게 부는 바람을 이른다.

노도유탕[魯道有蕩]  시경(詩經) 재구(載驅)에 “노나라 길이 평탄하거늘, 제자가 간밤에 묵은 곳에서 출발하도다.[魯道有蕩 齊子發夕]”라는 말이 나온다.

노독거남[魯獨居男]  순정몽구(純正蒙求)에 “노(魯)나라 유하혜(柳下惠)는 성이 전(展), 이름이 금(禽)인데, 원행(遠行)하다가 밤에 도문(都門) 밖에서 유숙하였다. 이때 날씨가 무척 추웠는데, 갑자기 여자가 와서 재워달라고 애원하였다. 유하혜(柳下惠)는 그녀가 얼어 죽을까 싶어서 품속에 앉혀 옷으로 덮어주고 새벽까지 문란한 짓을 하지 않았다. 노(魯)나라에 혼자 사는 남자가 있었다. 이웃에 과부가 있어, 밤에 폭풍우로 집이 무너지자, 남자에게 와서 재워달라고 애원했다. 남자는 문을 닫은 채 ‘남녀가 60세가 안 되면 동거하지 못하오. 지금 우리는 다 어리므로 들어오게 할 수 없소.’라고 하였다. 부인이 말하기를 ‘유하혜(柳下惠)는 돌아갈 집이 없는 여자를 덥혀주었어도 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문란하다고 일컫지 않았소.’라고 하니, 남자는 ‘유하혜는 돼도 나는 안 되오. 내가 나의 안 되는 것으로 유하혜의 되는 것을 배워야 되겠소?’라고 하였다. 공자(孔子)는 이 말을 듣고 ‘착하도다! 유하혜를 배우려고 하는 자 중에는 이와 같은 자가 있지 못했다.’라고 하였다.[魯柳下惠 姓展名禽 遠行夜宿都門外 時大寒 忽有女子來託宿 下惠恐其凍死 乃坐之於懷 以衣覆之 至曉不爲亂 魯有獨處室者 隣有嫠婦 夜暴風雨室壞 趨而託之 魯人閉門曰 男女不六十不同居 今皆幼不可納 婦人曰 下惠煦嫗 不逮門之女 國人不稱其亂 魯人曰 下惠則可 吾固不可 吾將以吾之不可 學下惠之可 孔子聞之曰 善哉 欲學下惠者 未有似於此也]”는 내용이 보인다.

노독거남[魯獨居男]  시경(詩經) 소아(小雅) 항백(巷伯)의 “약간 벌어지고 조금 더 벌어지다 남쪽 기성을 이루었네.[哆兮侈兮, 成是南箕.]”에 대한 모형(毛亨)의 모전(毛傳)에 “노나라 사람 가운데 집에 혼자 사는 남자가 있었다. 이웃에 있는 과부 또한 집에 혼자 살았는데, 밤에 폭풍우가 닥쳐 집이 무너졌다. 부인이 달려와 그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남자는 문을 닫고 받아주지 않았다. 부인은 창을 통해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어이하여 나를 받아주지 않습니까?’ 남자가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남녀는 60이 되지 않으면 사사로이 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당신이 어리고 나도 어리니 당신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부인이 말하기를, ‘당신은 어이하여 유하혜(柳下惠)처럼 그렇게 하지 못합니까? 돌아갈 집이 없는 여자를 체온으로 따뜻하게 해 주었지만 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음란하다고 일컫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남자가 말하기를, ‘유하혜는 할 수 있지만 나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魯人有男子獨處于室, 鄰人嫠婦又獨處于室, 夜, 暴風雨至而室壞, 婦人趨而托之, 男子閉戶而不納. 婦人自牖與之言曰, 子何爲不納我乎. 男子曰, 吾聞之也, 男女不六十不間居. 今子幼, 吾亦幼, 不可以納子. 婦人曰, 子何不若柳下惠然. 嫗不逮門之女, 國人不稱其亂. 男子曰, 柳下惠固可, 吾固不可.]”는 이야기가 보인다. 이 이야기로 인해 노나라의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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