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반[鷺班] 노반은 해오라기(또는 백로)가 서 있는 것처럼 질서 정연한 조정 관원의 반열을 가리키는 말이다. 품계별로 늘어선 조정 관료의 모습이 해오라기 무리와 같았던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노반[魯班] 魯班(노반)은 魯般(노반)이라고도 하는데,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전설적인 장인이자 건축가인 공수반(公輸班)을 이른다. 혹은 공수반(公輸般)이라고도 한다.
노반[露盤] 이슬을 받기 위해 동으로 만든 승로반(承露盤)을 말한다. 한 무제(漢武帝)가 신선술에 미혹되어 감로를 받아 마시고서 수명을 연장하고자 하였다. 이에 건장궁(建章宮)에 신명대(神明臺)를 세우고 동으로 선인장(仙人掌) 모양을 만들어 세워서 동반(銅盤)을 떠받쳐 감로를 받게 하였다. <漢書 卷25 郊祀志上>
노반[露盤] 한 무제(漢武帝)가 이슬을 받기 위해 신명대(神明臺)의 위에다 동선인(銅仙人)을 세우고 그의 손에다 얹어 놓은 승로반(承露盤)이다. 뒤에 한나라가 망하자 조조(曹操)의 손자인 위 명제(魏明帝)가 청룡(靑龍) 1년(233) 8월에 궁관을 불러서 승로반 선인을 궁전 앞에 옮겨다 세워 두라고 명하니 궁관들이 승로반 선인을 해체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위 명제는 이 승로반 선인과 같은 크기로 또 하나의 승로반 선인을 구리로 주조하여 그 옆에 세워 두었다. <緯略 卷9 承露盤銘>
노반문[魯般門] 노반문은 한나라 때의 궁궐 문 이름으로, 노반문(魯班門)이라고도 부른다. 한 무제(漢武帝) 때 대완(大宛)의 말을 얻고 그 기념으로 동상을 만들어 노반문 밖에 세우고 문 이름을 금마문(金馬門)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노반문전농대부[魯般門前弄代斧] 반(般)은 노(魯) 나라 교장(巧匠) 공수자(公輸子)의 이름이다. 매지환(梅之渙)이 이백(李白)의 묘(墓)에 쓴 시가 있는데 “이 채석강(采石江) 가의 한 무더기 흙이여, 이백의 이름이 천추에 높도다. 오는 이 가는 이들 모두 시가 있건만 노반(魯般)의 집 앞에서 도끼를 놀리는 격이로다.[采石江邊一堆土 李白之名高千古 來來往往皆有詩 魯般門前弄代斧]”라고 하였다. 즉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노반자이택[魯泮資麗澤] 노반자여택. 성균관에서 서로 학문을 강마하였다는 뜻이다. 반궁(泮宮)은 학궁(學宮)으로, 시경(詩經) 노송(魯頌) 반수(泮水)에 “즐거운 반수에서 잠깐 미나리를 뜯는다. 노후가 이르시니 그 깃발을 보리라.[思樂泮水 薄采其芹 魯侯戾止 言觀其旂]”라고 하였다. 이택(麗澤 여택)은 친구간에 서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학문을 강습하는 것으로, 주역(周易) 태괘(兌卦)에 “두 못이 서로 붙어 있는 것이 태괘이니, 군자는 이것으로 붕우간에 강습한다.[麗澤兌 君子以朋友講習]”라고 하였다.
노반지교[魯般之巧] 손재주가 있어 무엇이든 잘 만드는 것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노반(魯般)은 노 애공(魯哀公) 때의 뛰어난 목수인 공수반(公輸般)을 말한다. 성이 공수이며 이름이 반(班)인데 반(般)으로 쓰인다. 노(魯)나라 출신이므로 노반(魯般)이라 한다.
노반척기[壚盤滌器] 한대(漢代)의 문장가인 사마상여(司馬相如)가 탁왕손(卓王孫)의 딸 탁문군(卓文君)을 아내로 삼아 자기 고향인 성도(成都)로 돌아갔으나, 집이 가난하여 먹고살 길이 없자, 목로주점을 차려서 탁문군은 술을 팔게 하고, 자신은 남의 고용인이 되어 쇠코잠방이를 입고 시장에서 그릇 닦는 일을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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