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는 신하로부터 일에 의하여 미혹되거나 말에 의해 그 총명이 가려지는 경우가 있으니, 이 두 가지는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신하가 어떤 일에 대하여 쉽게 말하며 비용이 적게 든다고 일로써 군주를 속이는 경우가 있다. 군주가 이에 미혹되어 살피지도 않고 치하하게 되면 그 일로 인하여 오히려 신하가 군주를 제어하게 된다. 이와 같은 것을 ‘일에 미혹된 것’이라고 한다. 일에 의해 미혹된 자는 우환에 의해 곤경에 처해진다.
처음에 신하가 진언을 할 때는 비용을 적게 말하고, 일을 진행하는 동안 비용이 많아졌다면 비록 공을 세웠다 하더라도 최초의 진언은 진실한 것이 못되니, 진실하지 못한 것은 죄가 된다. 진언이 진실 되지 못한 자는 벌을 받고, 일을 하면서 공을 세운 자는 상을 받게 된다면 여러 신하들은 감히 말을 꾸며서 군주를 어둡게 하지 못할 것이다.
군주의 도(道)는 신하로 하여금 앞에 한 말을 뒤에 뒤집지 못하게 해야 하며, 뒷말이 앞말과 다르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니, 말과 결과가 부합하지 않을 경우 비록 일에 성과가 있더라도 반드시 죄를 물어야 한다. 이를 일러 임하(任下: 아래에 맞기고 책임을 물음)라 한다.
신하가 군주를 위해 어떤 일을 계획하면서 다른 신하들이 비방할 것을 염려해 미리 “이 일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자는 이 일을 시기하는 자입니다.”라는 말을 늘어놓을 경우, 군주는 이 말을 새겨 두고 더 이상 다른 신하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신하들은 그 말이 두려워 감히 그 일에 관해 논하려 들지 않게 된다.
이처럼 군주가 간언을 거부하고, 군신들이 침묵하게 되면 충신의 진언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다만 가상히 여겨지는 신하만 신임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이 되는 것을 말에 의해 가려진다고 한다. 말에 의해 가려지면 군주가 신하에게 제어 당하게 된다.
<한비자 제18편 남면02>
人主有誘於事者, 有壅於言者, 二者不可不察也. 人臣易言事者, 少索資, 以事誣主. 主誘而不察, 因而多之, 則是臣反以事制主也. 如是者謂之誘, 誘於事者困於患. 其進言少, 其退費多. 雖有功, 其進言不信, 不信者有罪. 事有功者必賞, 則群臣莫敢飾言以惛主. 主道者, 使人臣前言不復於後, 後言不復於前, 事雖有功, 必伏其罪, 謂之任下.
人臣爲主設事而恐其非也, 則先出說設言曰:「議是事者, 妬事者也.」 人主藏是言, 不更聽群臣;群臣畏是言, 不敢議事. 二勢者用, 則忠臣不聽而譽臣獨任. 如是者謂之壅於言, 壅於言者制於臣矣. <韓非子 第18篇 南面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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