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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경[丹桂擎]~단계림[丹桂林]~단계사생[檀溪死生]~단계연[端溪硯]


단계경[丹桂擎]  진(晉) 나라 각선(郤詵)이 현량과(賢良科)의 우등으로 뽑혀 스스로 말하기를 “마치 계수나무 숲의 한 가지와 곤륜산의 한 조각 옥과 같다.[桂林之一枝 崑山之片玉]”라고 한 데서 나온 것으로, 과거에 급제한 것을 뜻한다. <晉書 卷五十二 郤詵傳>

단계림[丹桂林]  진 무제(晉武帝) 때 극선(郤詵)의 현량 대책(賢良對策)이 천하제일로 뽑혔을 적에 무제가 극선에게 이르기를 “경(卿)은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하자, 극선이 대답하기를 “신의 현량 대책이 천하제일로 뽑힌 것은 마치 계림의 계수나무 한 가지, 곤산의 한 조각 구슬[桂林之一枝 崑山之片玉]과 같은 것입니다.”라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과거(科擧)에 급제한 인재들을 가리킨다.

단계사생[檀溪死生]  촉한(蜀漢)의 선주(先主) 유비(劉備)가 일찍이 형주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의 주연(酒宴)에 초대를 받고 갔을 때, 유표의 부하인 괴월(蒯越), 채모(蔡瑁) 등이 자기를 체포하려는 낌새를 알아차리고는 몰래 나가서 자기의 말인 적로(的盧)를 타고 도주하던 중, 양양성(襄陽城) 서쪽의 단계수(檀溪水)에 빠져서 나가지 못하게 되자 급히 말하기를 “적로야, 오늘 위태롭게 되었으니, 노력해야겠다.”고 하니, 적로가 단번에 세 길을 뛰어올라서 그곳을 빠져나가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단계숙원[檀溪宿願]  사원을 중수하려는 소망을 말한다. 동진(東晉)의 고승 도안(道安)이 효무제(孝武帝) 영강(寧康) 1년(373)에 양양(襄陽)에서 제일가는 단계사(檀溪寺)를 세우고, 다시 양주 자사(梁州刺史) 양홍충(洋弘忠)으로부터 구리 1만 근을 시주 받아 장륙불상(丈六佛像)을 주조한 뒤에, 이제는 숙원을 이뤘으니 언제 죽어도 좋다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단계사는 금덕사(金德寺)라고도 한다. <高僧傳 卷5 釋道安傳>

단계심법부여[丹溪心法附餘]  명대(明代) 방광(方廣)이 편집하여 1536년에 간행한 종합의서. 전 24권. 방광은 정용광(程用光)이 중정(重訂)한 단계심법(丹溪心法)에 주진형(朱震亨)의 학술이론과 서로 모순되는 부록이 일부 들어가 있음을 보고, 그 부록을 삭제하고, 따로 학자들의 방론(方論)을 단계심법(丹溪心法) 각문(各門)의 위에 실었는데, 그가 선정한 방론은 대부분 주진형의 학술 경험을 발명 보충한 것이다.

단계연[端溪硯]  중국 광동성(廣東省) 고요현(高要縣) 단계에서 나는 돌로 만든 질이 좋은 벼루. 단계연은 중국 광동성(廣東省) 조경부(肇慶府) 단계에서 생산되는 자석연(紫石硯)을 말하는데, 자석연은 특히 먹이 진하게 잘 갈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자 미상의 단계연보(端溪硯譜)에 의하면 “조경부 동쪽에 부가산이 가파르게 깎아질러 서 있고, 그 아래로는 강의 조수가 드나드는데, 그 강가로부터 산을 올라 3, 4리쯤 가면 여기서부터 연암이 보인다. 맨 먼저 만나는 것을 하암이라 하고, 또 그 위에 있는 것을 중암이라 하며, 또 더 위에 있는 것을 상암이라 하고, 상암에서 산등으로 돌아가면 그곳에 있는 것을 용암이라 하며, 다시 산 아래에서부터 길을 나누어 약간 동편으로 한쪽 산의 여러 바위가 있는 곳에 이르고, 여기서 또 서남쪽으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그곳에 있는 것을 방갱(蚌坑)이라 한다. 대체로 이 연암 즉 벼룻돌은 하암을 상등으로 치고, 중암과 용암, 그리고 한쪽 산의 여러 바위의 석재를 그 다음으로 치며, 상암을 또 그 다음으로 치고, 방갱을 최하로 친다.[肇慶府東有斧柯山 峻峙壁立 下際潮水 自江湄登山 行三四里 卽爲硯嵒 先至者曰下嵒 又上者曰中嵒 又上曰上嵒 上嵒轉山之背曰龍嵒 自山之下分路稍東至半邊山諸嵒 西南沿溪而上曰蚌坑 大抵石以下嵒爲上 中嵒龍嵒半邊山諸嵒次之 上嵒又次之 蚌坑最下]”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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