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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봉문[丹鳳門]~단봉선[斷封禪]~단봉성[丹鳳城]~단봉조[丹鳳詔]


단봉문[丹鳳門]  창덕궁(昌德宮)의 돈화문(敦化門) 왼쪽에 있는 문이다. 1712년(숙종38) 정시(庭試)는 2월 25일 창덕궁에서 설행되었다.

단봉선[斷封禪]  후한서(後漢書) 권17 제사지 상(祭祀志 上)에 따르면, 건무(建武) 30년 2월에 신하들이 봉선을 올릴 것을 주청하자, 이를 거절하였다. 건무중원(建武中元) 원년(56)에 회창부(會昌符)의 “적유(赤劉)의 9에 대종(岱宗)에 회명(會命)한다.[赤劉之九 會命岱宗]”라는 내용을 보고 장순(張純) 등의 주청을 받아들여 태산에 올라 봉선을 행하였다. 적유지구(赤劉之九)는 광무제가 고조(高祖)의 9대손이기 때문에 언급한 것이다.

단봉성[丹鳳城]  황제가 사는 경성(京城)을 뜻한다. 진 목공(秦穆公)의 딸 농옥(弄玉)이 피리를 불면 진나라의 서울인 함양(咸陽)에 붉은색의 봉황이 내려왔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한 무제(漢武帝)가 세운 대궐 위에 구리로 만든 봉황이 있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列仙傳 卷上 蕭史> <史記 卷12 孝武本紀 索隱>

단봉성남[丹鳳城南]  장안(長安)의 주택 지역을 가리킨다. 열선전(列仙傳)에 따르면, 진 목공(秦穆公)의 딸 농옥(弄玉)은 그녀의 남편을 따라 퉁소를 배웠는데 퉁소를 불면 함양성(咸陽城) 위로 봉황(鳳凰)이 날아 내려왔다고 한다. 이후로 서울[京城]을 가리켜 단봉성(丹鳳城) 혹은 봉성(鳳城)이라 불렀다. 성남(城南)이라 한 것은 당시 장안의 궁궐은 북쪽에 있고 남쪽은 주택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단봉조[丹鳳詔]  황제가 내리는 조서(詔書)를 가리킨다. 후조(後趙)의 왕인 석호(石虎)가 오색 종이에 조칙(詔勅)을 적어서 나무로 만든 봉황의 입에 물려 천하에 반포했던 데서 유래하여 천자의 조서를 단봉조(丹鳳詔)라 한다. <晉書 卷106 石季龍載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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