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분시왕[湍奔矢往] 여울물이 달려가고 화살이 날아가는 것처럼 급히 달려감을 이른다.
단불요대[斷不饒貸] 단불용대(斷不容貸). 단연코 용서하지 아니함.
단불용대[斷不容貸] 단연코 용서(容恕)하지 아니함. 조금도 용서(容恕)할 수 없음.
단비[斷碑] 단비는 평회서비(平淮西碑)를 말한다. 당 헌종(唐憲宗)이 회채(淮蔡) 지방을 평정했을 적에 한유(韓愈)가 헌종의 명을 받고 평회서비문(平淮西碑文)을 지었는데, 그 비문 내용은 배도(裴度)의 일을 주로 서술하여 배도의 공(功)을 제일로 삼았다. 그러나 회채 지방에 들어가서 반적(叛賊) 오원제(吳元濟)를 사로잡은 데 있어서는 실로 이소(李愬)의 공이 제일이었으므로, 당안 공주(唐安公主)의 딸인 이소의 아내가 금중(禁中)에 드나들면서 비문 내용이 사실과 어긋난 점을 자주 호소하였다. 그리하여 끝내 헌종이 명을 내려 한유가 지은 비문을 깎아 버리고 한림학사(翰林學士) 단문창(段文昌)에게 명해서 이소의 공을 제일로 삼아 비문을 새로 짓게 하여 비석을 다시 세웠다. <古文眞寶 卷3 平淮西碑 註>
단비[短臂] 이목(李牧)은 춘추 시대 조(趙) 나라 북변(北邊)의 명장인데, 몸은 장대하였으나 팔이 짧았다 한다.
단비[斷臂] 후위(後魏) 때 고승으로 중국 선종의 제2조가 된 혜가(惠可)가 달마에게 도를 받을 때 그의 왼팔을 잘라서 자기의 굳은 뜻을 보였다.
단비간목[段非干木] 안씨가훈(顔氏家訓)에 “원제(元帝)께서 그에게 대답하기를 ‘그대가 자신을 서늘한 바람[颸]이라지만 그대는 서늘한 바람[涼風]과는 다르고, 그대가 자신의 성씨가 단(段)씨라지만 그대는 간목(干木)이 아닐세 그려.’라고 하셨다.[元帝答之云:颸異涼風, 段非干木.]”라고 한 데서 보인다. “그대가 자신을 가리키며 단(段)씨라고 발음하였지만, 그대는 하동삼현(河東三賢)으로 불리던 간목(干木) 그 사람은 아니다.”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단간목(段干木)은 위 문후(魏文侯) 때의 사람이다. 광운(廣韻)에서는 풍속통(風俗通)을 인용하며 단(段)을 성씨로 여겼다. 단간목(段干木)은 원래 성(姓)이 단간(段干)씨로 전국(戰國)시대 초기 위(魏)나라의 명사(名士)였다. 사자하(師子夏), 전자방(田子方) 등과 함께 모두 대학자이면서 차례로 위 문후의 스승이 되었으므로, 함께 하동삼현(河東三賢)으로 일컬어졌다. 그의 아들 단은여(段隱如)가 성(姓)에서 간(干)자를 떼어내고 단(段)자만으로 성씨를 삼았으므로 단(段)씨 성으로도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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